잔잔 방/스크랩북

22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논리적인 것들에 맞서려면

 잔잔 2015. 8. 25. 16:39

너는 열 시간 동안 침대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해.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모랑 이모부는 네가 밤 아홉 시부터 적어도 열 시간 동안 자기를 바래. 그건 오로지 너를 위해서야. (…) 좋아, 내가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네가 알아들을 줄 알았다. (25-26)

 

홍역에 걸린 동생과 떨어져 이모네 집에서 지내게 된 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못마땅하다. 이모네는 정원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톰은 고장 난 괘종시계가 열세 번 종을 치는 걸 듣게 된다. 혹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시간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톰은 시계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가 주방 뒤쪽 문밖에 히아신스향이 나는 멋진 정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톰은 정원이 없다고 거짓말 한 이모를 혼내줄 겸해서 어제 밤에 본 정원을 다시 확인하는데, 이모 말대로 문 밖으로 보이는 건 골목길과 쓰레기통뿐이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톰은 이모부에게 밤사이 있었던 일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러나 혼만 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동생인 피터에게만 이야기하기로 하고 되도록 입을 열지 않기로 한다.

 

이모부는 자기가 논리적으로 옳다고 확신했지만, 톰이 지금 생각해보니 이모부의 논리에 결함이 있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모부는 하루에 열두 시간씩 두 번, 합해서 스물네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깊이 검토해 보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어. 하지만 하루에 열세 시간씩 두 번 있다면 어떻게 될까? 밥 아홉 시부터 아침 일곱 시 사이에 어디엔가 열세 시가 있다면, 그건 열 시간이 아니라 열한 시간이 되는 거야. 그렇다면 열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한 시간을 여분으로 가질 수 있어. 자유로운 한 시간을...... (29)

 

 

이모와 이모부는 ‘왜’냐고 묻는 톰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해준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톰에게는 두 사람의 논리가 조금 수상하다. 그렇게 톰의 시선으로 책을 읽다 보니, 역시 시간을 열두 시간씩 두 번, 합해서 스물네 시간으로 치고 있는 우리의 세계에도 수상한 눈빛을 보내게 된다. 왜 그동안 ‘이모부의 논리’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던 걸까.

그렇게 주변의 견고한 논리들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톰에게는 함께 놀 친구와 장소가 생긴다. 역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까. 어쨌든 이렇게 톰은 정원이 있는 마을에 사는 해티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사실은 해티만이(아벨아저씨를 제외한) 톰을 볼 수 있었기에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정원에서 만난다, 물론 톰의 시간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들은 정원과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를 타고, 물고기를 만지고, 놀이 집을 만들고, 강둑길을 걷기도 하며 신나게 논다. 중간 중간 사고가 나서 혼이 나기도 하지만 호기심의 눈을 가진 그 때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해티가 톰에게 물었다. “유령이 되면 기분이 어떨까?” 유령이 손수레를 굴린다는 노래를 부르다가 생긴 질문이었다. 그러자 톰도 해티에게 묻는다. “그래, 어떤 기분이야?”

 

뜨악. 톰과 해티는 서로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톰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고 있던 나는 당연히 해티쪽이 유령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티의 시선에서 보자면, 유령은 당연히 톰이었다. 심지어 해티는 톰이 유령이라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넌 바보 같은 유령이야! 아니면 왜 그런 옷을 입고 있어? 우리 사촌 오빠들은 아무도 정원에서 그런 옷을 입고 놀지 않아. 그 옷은 요즘 옷이 아니야. 난 알아! 그런 옷을 입고 밖에 나오다니!” (144)

 

 

 

톰은 이런 해티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해티가 유령이라는 근거를 찾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뒤적인다. 해티와 싸울 때, 톰은 내가 유령이 아니니까 당연히 네가 유령이라고 했던 자신의 논리가 빈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해티와 다툰 날, 오후, 톰은 해티가 따지고 드는 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톰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해티는 소녀답게 옷 차림에 민감해서, 톰과 말다툼을 할 때, 옷차림새를 무기로 이용했다. 톰은 자기도 그런 관찰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47)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였다. 영국에서 웰링턴 공작이 바지를 입어서 화제가 되었다.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성직자와 대학은 바지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제 톰은 해티와 논쟁할 때 써먹을 정보를 충분히 얻었다고 생각했다. (151)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해티의 논리도 톰의 논리와 똑같다. ‘우리가 입는 옷과는 다른 옷을 입었으니까 네가 유령이야, 우리가 입는 옷을 입은 사람은 유령이 아니지.’ 다만 해티는 옷이 다르다는 어떤 ‘정보’를 이용해 같은 주장의 근거(?)를 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톰이나 해티 역시 ‘이모부의 논리’ 전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원에 가는 시간이 늘어갈 수록 톰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밤중 정원에서 일어나는ㅡ시간이 거꾸로 가기도 하고, 손과 발이 하나가 되어 감촉을 느끼고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는ㅡ 일들은 사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래도 상관없다. 그렇게 꿈꾸던 여름방학을 보낼 수 있는 곳과 친구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톰은 조심스레 이런 생각을 펼쳐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다고....그 시간들은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시간’의 일부지만요.”

“글쎄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면....”

이모부가 말했다. 톰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과거’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톰은 문득 처음으로 해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어떤 여자가 내 ‘시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나한테는 ‘현재’처럼 보이지만, 그 여자한테는 ‘미래’처럼 보이겠군요.”

“A라는 이 시점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알기 쉬울 것 같은데....” (224-225)

 

 

 

그래서 마침내 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모부의 논리’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대체 ‘논리’라는 게 뭘까. 답하기 어렵다. 낱말을 찾아보니 말할 論자와 다스릴 理자로 되어있다. 혹시 무언가를 다스리기 위해 말해지는 것들을 논리라고 하는 게 아닐까. 그게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논리적인’이라는 포장을 한 것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간주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것들에 겁을 먹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그게 나빴던 게 아닐까싶다. 이제 한 번씩 의심을 해보자. 논리 정연한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보는 거다. 대신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 앞에 펼쳐진 “한밤중의 정원”에 겁먹지 않고 기쁘게 들어갔던 톰의 용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