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공책

정기용을 읽다1: <사람·건축·도시>

 잔잔 2016. 6. 24. 14:07

발단은 그랬다. 

 

2016년 여울이도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고 나는 어떤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 그때 우리는 월선리에 있는, 언젠가  들어가 살 그 시골집을 걱정하고 있었고 쌩쌩은 내게, 니가 공부해서 직접 짓는 건 어때, 라고 낚싯줄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물었던 것이다. 건축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되고 싶은 거, 라고 언젠가 한번 쌩쌩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 정재은 감독의 다큐 <말하는건축가,2011>을 보고 건축가 정기용선생님에게 반했다. 다큐 속에서 그려지는 정기용선생님의 건축 그리고 사람에 대한 열정, 집념같은 것들에 마음을 뺏겼다. 

 

 

 

1

 

사람·건축·도시

 

 

정기용선생님이 쓰신 글들중에 사람, 건축, 도시라는 커다란 세 주제에 묶이는 글들을 엮어 낸 두꺼운 책이다. 쭈욱 읽어내려가다보면 선생님의 건축철학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 중에 내가 마음에 새겨놓고 싶은 부분들을 정리해둔다.

 

책을 읽으며 새겨두고 계속 가지고 가고 싶은 것 세가지가 생겼다. 첫 번째는 건축의 공공성과 그 본질에 대한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거주한다는 것에 대해. 마지막은 도시, 도시의 배후지 그리고 결국, 나에 대한 것이다. 

 

 

 

 

49. 파괴로부터 시작하는 건설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부터 재창조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건축인들이야말로 그들이 이 새대에 사회적 소명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일들을 그의 개별적 작업에서 실천해내는 것이다. 시간은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원래 순환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우리들은 이제 파괴의 발톱에서 신음하는 시간과 기억들을 구출하여 그들이 존재할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간과 기억은 우리들이 거주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배후지가 되버린 지역들에 대해. 지역을 살린다는 건 자기인식, 존중, 내가 나인것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시키는 것. 

72. 문화란 삶을 지속시키며 시간과 공간상에 누적하여 공유해온 가치다. 그것이 아무리 지금은 초라해보여도 말이다. (...) 새로운 사회의 재편이 누구를 위한 어떤 세상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농민들은 자기부정을 정당화한 채 도시로 떠나버렸다. (...) 이렇게 해체된 농촌의 풍경속에 철골로 만든 축사나 비닐하우스가 비집고 들어오는가 싶더니, 세계화가 어떻고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이제 농촌은 그 누구도 존재 이유의 해법을 갖고 있지 않은 질문의 땅이 되어버렸다.

 

102. 그래서 나는 먼 데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우리들의 땅과 역사와 그 속의 일상적 호흡소에 우리들이 의연하게 지속시켜야 할 우리들의 건축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것들은 바로 저 길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잊어버린 우리들의 신화를 되찾아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상식의 명령이다.

 

111.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란, 사람과 방의 관계에서, 방과 방의 관계에서, 방과 길의 관계에서, 마을과 대지의 관계에서 의도적이고 강제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조건으로부터 최소한의 것들로 집합을 이룬 것을 의미한다. 

 

134.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는 "앞으로의 예언은 역사적 투시가 아닌 지리적 투시를 의미하며 우리로부터 어떠한 결과를 은폐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인간생활의 통시적, 수평적 경험과 함께 개인 행동 및 사회관계의 공간적 차원간의 복합성과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139. 도시는 하나의 거대하고 무질서한 빈 공간이 일정한 논리와 방식을 따라 조직된 결과로 파악될 수 있다. 이때 이 조직화의 기본논리는 일정한 역사발전 단계에서 한 사회구성체의 지배적 관계를 따르며, 이는 곧 그 구성체의 지배적 생산관계를 보다 안정적이고 항구적으로 재생산하려는 지배계급의 요구에서 그 구체적인 표현을 얻는다. 

 

193.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고 실천하던 사람들이 전통사회의 농민들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않고 생필품과 사람을 매개해주는 사람들이 시장의 상인들이다. 남대문, 청계천, 동대문 시장 없이 어떻게 서울이 살아있는 도시이겠는가? 시장상인들은 도시를 말하지 않고 '도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225. 도시 속에서 모든 토지와 건물의 사유재산권은 인정되지만, 사실상 공적공간에 기반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어떤 대지나 건물의 값이 매겨지는 시스템은 늘 이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떤 대지나 건물도 그 자체로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도시 전체 맥락 속에서 결정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개별건물과 도시전체는 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가치와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곧 나의 가치는 이웃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이야말로 도시 속에서 모든 공간은 긴밀한 유대를 갖고 있는 공공의 산물임을 확인해야한다.

 

254. '아늑하다'라든가 '친근하다'든가 '풍요롭다'는 공간에 대한 감정은 스스로 장소와의 교감에서 터득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과 교감하는 장을 넓혀주는 것이 학교건축이 수행해야할 덕목이다. (...)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라기보다는 사건(사고가 아니라)이 일어나고 회상할 가치가 있는 기억의 보고다.

 

305. 그것은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겠다는 유토피아식 이념이나 환상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쫓기고 부딪히며 찾아낸 형식, 즉 편리함과 최대의 이익을 우상화하면서 만들어낸 '건축의 교환가치'의 금자탑인 것이다. 언어만이 사고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사고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앞에 얼굴을 내민 실체를 비로소 읽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315. 이데 대해 투렌Alain Tourain은 그의 현대성 비판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사회운동은 이성과 주체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화된 경제와 개인화된 문화 사이에 아무 내용없는 빈 공간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327.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362. 거주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내의 존재로서 우주의 질서까지 동시에 구축하는 것이다. 즉 거주행위는 세계 속에 자신의 출발점으로서의 중심을 잡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세계와 연관하면서 제일먼저 떠오르는 점은 어린시절의 '가정'이나 '주택'과 결부하게 되는 게 사실이며,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다. 중심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주변부에 무언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세계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알려진 것을 밝혀준다.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로서 그 공간 속에서 위치를 획득하는 지점인 중심은 인간이 공간속에서 머무르며 생활하는 점이다. 

 

367. 건축은 거주하는 곳이며 또한 우리가 내면으로 되돌아오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좋은 건축, 좋은 장소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교감이며, 기억이다. 

 

393. 대체로 20세기 이전 서구와 한국의 전통 건축언어는 문화적으로 통일된 총체적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했고, 이는 현대건축의 모델이 되었으며, 일정한 법칙을 갖는다. 서양의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이나 중국 송대의 조형법식들은 동서양 건축법칙의 근간을 이루며 유동성이나 견고성과 균제의 미를 건축의 목적으로 삼았다. 현대 건축의 끊임없는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지구상에는 여러 세기를 지탱해온 전통건축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건축이 근본적으로 보수적이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생태적이기 때문이다.

 

 

 

 

p.s. 정기용선생님의 마지막모습을 담은 다큐가 끝나고 한참 멍했다. 정재은감독의 다큐는 말하는 건축가, 사회적 건축가로서의 정기용 선생님을 보여주는 것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 다큐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다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