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연구소

나에게 있어 대안 교육이란

 잔잔 2014. 6. 18. 00:35

 

 

 

 

어떤 것에 대한 '대안'인가?

 

그 점이 설명되야 글을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시작해본다.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제도교육에 대한 대안교육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는 보통 그 틀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틀, 제도교육, 즉 학교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 싫고 좁은 틀 안에서도 아이들은 각자의 시간을 또 다르게 만들기도 할 것이고, 선생님들 또한 어떤 것들을 함께 즐겁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전체가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게 제도교육인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들고 있다. 물론 그 틀이 별로 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주의해서 보고 싶은 것은 그 틀 안을 메꿔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대안교육이란 뭘까? (갑자기, 충동적으로) 교육에 대한 대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가르치고 기름에 대한 대안.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을 찾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부정되는 교육. 인위적인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만 얘기할 때, 내 마음 속 어딘가 혹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런것만은 아닌데...음"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덧붙여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 있거나 아직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분명 내가 하는 얘기지만 아직 정리가 덜 된, 덜 여문 열매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너무 일찍 수확해서 생기는 문제)는 표시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을 찾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여기서 어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솔직히 여기서 나는 어른, 아이의 구분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배움을 찾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녀노소 할 것없이, 나라, 인종,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모든 생명에게 해당하는 참인 명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또 따로 있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오~ 천국인가, 그곳은?) 우린 저 명제를 실현할 수 있겠지. 왜 스스로 말하면서도 너무 높은 이상일 뿐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휴. 아무래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다시 정리를 해보자.

 

내가 위에서 얘기한 그런 자연스러운 배움과 관계의 장을 현대사회는 잃어버렸다. 때문에 '대안'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다시 그 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으로서의 대안 교육.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안 교육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학교에서든, 대안학교에서든, 길거리에서든, 감옥에서든 장소가 어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그러한 '대안'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이 고민하고 나누고 함께해야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을 대안교육연구소 이음에서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1 일단 우리의 삶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2 그리고 그 삶속에 '대안'을 펼칠만한 구멍, 구석, 장을 찾아야 한다.

3 그 다음 함께 할 사람들을 찾고 모인다.

이렇게 하면 그 다음의 일은 운명 혹은 어떤 흐름에 맡기면 된다. 대안교육연구소 이음에서는 우리 삶의 모습을 면밀히 보기 위해, 제도교육, 역사, 경제 등의 공부를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제안을 해보며 난잡한 글을 마친다.

 

 

2013. 4. 21 대안교육 연구소 이음을 시작하며

대안교육연구소 이음을 만들기로 하고 나서 첫번째 모임을 하기 전에 <나에게 있어 대안교육이란>을 제목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연필을 들고 쌩쌩은 노트북앞에 앉아 진지하게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일동산에 김밤을 싸들고 가 서로가 쓴 글을 발표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안교육연구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에게 있어 대안교육이란?  (0) 201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