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일기장

수영장 가는 길

 잔잔 2016. 6. 25. 02:24

2016년에 할 것들 중에 첫번째가 신체단련이었다. 여울이가 새꿈에 가기 시작한 3월부터 5월까지는 주민센터에서 요가를 하다가 6월부터 수영을 하고 있다. 요가를 쭉 하려했으나 도서관에서 하는 수업과 시간이 겹쳐 종목(!)을 변경했다. 집에서 수영장이 꽤 멀기도 했고(교통편이 좋지 않다), 강습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수영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실내수영장에 가보기로 길을 나섰다. 길찾기에선 자전거로 20분이면 도착한다고 하였으나, 나는 한시간을 헤매다 수영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산림욕장앞에서 발을 돌렸다. 돌아갈 힘까지 다 쓸 순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니 10분만 걸으면 나오는 수영장을 앞에두고 돌아선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한게 6월 1일이었다.

 

 

 

1

지도를 뚫어져라 10분쯤 보고 나섰다. 지도를 보니 지난번엔 출발위치가 잘못된줄도 모르고 방향만 따라 간 거였다. 이번엔 차분하게 출발하여 한시간정도 걸려서 수영장에 도착했다. 준비해 간 건 달랑 물병하나와 지갑이었다. 그런데 수영장앞에 서 있자니 수영장물냄새가 코를 찌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은 못가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어 수영복을 빌려 수영장에 들어갔다! 수영이라고는 부천에서 한달, 상일동에서 두달 배운 게 다였다. 자유형을 막 배우고 배형을 막 시작했던가. 나는 수영도 참 그동안의 나처럼 해왔군, 하며 간단하게 몸을 풀고 물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물 속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그정도는 배웠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띄엄띄엄 해왔는데도 이어지는 것이 마음에 흡족하기도 했다. 다른 것들도 그럴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따. 아마 몸에 새겨놓은 것들만 그럴 수 있겠지, 수영처럼. 뭘 하나 정하기 어렵다 했는데, 사실 그게 어려울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몸에 새겨가는 것이, 그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아무런 티도 안나고 그대로인 것만 같은 것이 무서운 걸거다. 준비도 없이 무작정 수영을 해보겠다며 물속에 들어가 있는 내가 너무 웃겨 입가를 씰룩이며 혼자 웃었다. 

 

 

2

그러고 나서 며칠뒤 수영준비를 단단히 하고 수영장을 향해 페달을 굴렸다. 하지만 길찾기가 알려준 길이 험해서(반은 오르막길에 시멘트공장주변을 달리는 커다란 차들과 인도도 없는 이차선도로 등)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수영장은 산너머에 있었는데 차로 갈때는 긴터널을 통과해 금방 갈 수 있었다. 이번엔 산을 넘어 가보기에 도전했다. 우선 자전거를 타고 30분쯤 가 등산로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다. 그리고 산을 40분쯤 타고 내려가니 수영장이 보였다. 이렇게 하여 자전거+등산+수영+등산+자전거, 라는 3시간이 좀 넘는 운동코스가 짜여졌다.

 

 

3

다음날, 자전거+등산 후 수영이 힘들어(수영을 시작하는데 이미 지쳐있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검색 후 길을 나섰다. 7번버스를 타고 상하수도사업단에서 150번 버스로 갈아 타고 금호장례식장에서 하차후 조금 걸으면 수영장이 나온다고 했다. 환승하려는 정류장에서 내가 탈 버스를 기다리며 검색을 해보니 150번버스만 언제쯤 도착하는지 표시가 안 된다. 30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정류장 뒷쪽에 붙어 있는 버스노선도를 보며 이제 어쩔까, 멍하니 있는데 그 순간!!! 버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쌩 지나간다. 아... 들고 있던 우산으로 바닥을 탕탕 때려가며 분풀이하다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좀 가다가 또 다른 버스정류장이 보이길래 정류장에 붙어있는 버스노선도를 슥 훑었다. 그런데 내 눈에 실내체육관 정류장이 들어왔고, 그 순간 그곳으로 가는 61번 버스가 딱 내 앞에 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버스를 타고 수영장에 갔다. 거기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있고 방법도 다양하다. 한가지 방법이 안된다고 포기해버렸는데 다른 길이 딱하니 내 앞에,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있었다. 그렇게 출발전부터 알아보고 또 검색해가며 차근차근 준비한건 그냥 쌩 지나가버리고 전혀 뜻밖의 곳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터덜터덜 걸어가던 중에 우연히 다른 길을 만났다.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4

결국 자전거+등산+수영+등산+자전거 코스로 수영장을 다니고 있다. 내 시간(10시-3시)을 거의 다 써야 하기에 일주일에 최대 3번 가능하다. 7월부터는 새롭게 시작한 일이 생겨 일주일에 두번할 수 있겠다. 엄청 힘들지만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물 속에서도 처음보다 더 오래, 여러번 왔다갔다 하며 놀 수 있게 됐다. 물론 자유형이랑 발로만 하는 배형(팔은 아직 안 된다)만 가능하다. 강습을 받는 게 아니고 물에 가서 놀다오는 모양이라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한다. 그것도 재밌다. 요즘은 수영장 가는 길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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