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공책

정기용을 읽다2 <감응의 건축-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잔잔 2017. 6. 17. 21:49

 

 

 

 

 

42. 크고 작은 대다수 소도시들은 대체로 기계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건축을 양산한다. 합법적인 최소요건만 갖추어지면 모든 일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건축을 진행하는 것이다.

 

43. 그러나 이 문제에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깇이 있는 질문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 건축가는 공간을 제안하지만 실질적으로 시간까지 제한할수는 없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많은 책임을 지는 직업인다. 바꿔말하면, 사람들과 삶은 변하고 식물은 자라난다.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과 식물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정지된 건축은 생명력있는 건축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건축을 지속가능케 하는 힘이다.

 

44. 건축가가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는, 공간이 아닌 시간을 설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간은 수단에 불과하고, 시간은 건축의 목적이 된다.

 

108. 건축은 언제 어디서든 주변과 관계를 맺게 되어있다. (...) 그러면서 내가 배경이 될것인가 형상이 될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 형상 속에서도 모두 똑같은 주인공은 아니다. 마치 연극에서 각기 다른 배역을 맡은 인물과 소품처럼 누군가는 배경이 되고 어떤 부분은 주인이 된다. 건축에서 벽체는 배경을 눌러앉게 하는 요소다. 벽체가 적절하게 배치되었을때 형상figure과 바탕ground 사이에 관계가 생긴다. 

 

111. 총체적으로 건축을 한다는 것holistic architecture은 형태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어떻게 건물이 하나의 문화적 풍경으로 작동하는지 탐색하는 일이다. 모든 풍경은 연속적. 하나의 건물-->기존의 풍경과 더해져 총체적 풍경으로 담지됨. 바로 이것이 건축의 숙명적인 공공의 조건.

 

113. 공공건축이란 '공공이 발주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람, 주민, 시민)가 원하는 동시에 땅이 원하는 건축이며, 시대가 원하는 건축이고, 그리고 끝으로 지구가 원하는 건축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121.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지만 그 순간 건물은 그 나름대로 '생의 유전자'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143. 공공건물, 도로, 교량 등의 토목구조물들, 인도 등의 길들은 모두 공공디자인영역. 하지만 건축과 토목과 기술과 조경 등이 서로 단절되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어떻게 통함해야할까.

 

152. 세월이 지나면서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다.

 

 

(무주 등나무 운동장; 군민들의 불만을 듣고 운동자에 그늘을 설치하기 위해 운동장 주변에 240여그루의 등나무를 심은 김세웅 전 무주군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건축가 정기용)

 

 

154. 발바닥으로 감지된 세계, 발바닥으로 느끼는 바닥의 표면들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내면의 공간의 질을 변별력 있게 판단하게 한다. 따라서 도시의 인도나 차도, 나아가서는 건물의 외부바닥, 이어서 1층 로비의 바닥 재료를 어떤 질감 어떤 재료로 할 것인가느 ㄴ건축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의 요소.

 

158. 기후, 시간, 사람, 식물...결합 -->집단 기억 --> 의미 --> 장소성:공동츼 창작품(공공디자인) (...) 다시 말하자면, 건축은 아무리 우리가 부정하려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망속에 포획되는데 그것은 역사, 문화, 우주와의 필연적인 관계를 넘어설 수 없기 떄문이다.

 

186. 아이들이 자기 삶을 공간속에서 조직해내는 능력은 신비할 정도다.

 

243. 건축속에서 진행될 오늘과 내일의 삶을 직조하며, 또한 시대마다 건축에 위임하고 싶은 정신과 삶을 반영하는 일을 하는 사람. 다시말해 건축가랑 근사하게 집을 그리는 사람이기 이전에 우리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며 여러가지 설계행위를 통해 건축을 미리 살아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 그들에게는 다양한 지식이 요구되고 시대정신과 역사의식, 새롭게 창조해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 예) 된장공장 설계 --> 왜 된장공장을 짓지? 공장규모와 그에 따른 공정에 대한 지식, 농촌현실에 대한 시대적, 역사적 감각 산자락에 어떻게 합리적, 미적, 환경친화적 건축물을 만들어낼 창의력

 

270. 정말로 좋은 종합복지관을 만드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누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도 수용할 수 있는 최상의 불확정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운영할 주체와 함께 협의하여 설계하는 것이다. 

 

295. 길은 풍경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파인 레코드판이 소리를 저장하듯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오래된 길들을 그림일기figure journal라고 부르는 것이다. (...) 길은 반복적 몸짓으로 탄생하며, 반복된 몸짓은 생존에 요긴했던 '가까운 것', '친근한 것'들을 엮어주면서 생겨난다.

 

296. 가장 하찮고 별볼일 없는 것들, 하지만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들, 그런 몸짓들이 삶을 지속시키고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이 만드는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두가지가 전제된다. 하나는 근접성이고, 다른 하나는 체험이다. 

 

301. 사실 삶에 제일 근사한 집은 창고같은 집이다. 집은 칸 많이 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미하고 기능적으로 분할된 공간이 아니라 살던 모든 것을 수용하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301-302. 건축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자연의 형상을 닮게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된 시간성, 빛, 바람, 구름, 별, 먼지, 그림자, 하늘 등을 건축에 결합시키는 것이다.

 

303. 건축의 첫번째 본질은 필요성이다. 사적인 필요가 사적인 건축을 낳는다면 공적인 필요는 다수를 위한 '공공건축'을 탄생케 한다. 따라서 공공건축에서 첫번째 문제가 되는 것은 '필요성'이란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지 묻는 점이며, 둘째는 어떻게 그 규모와 형식을 갖출 것인가 하는 점이다.

 

304. 마뉴엘 카스텔이 주장하는 '집합적 소비재들(병원, 학교, 공원, 복지시설 등)'의 공공건축에서 건축행위의 필요성에 대한 검증과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검증이야말로 건축이전에 철저하게 고민해야하는 요체이기도 하다.

 

305-306. 나무의 뿌리는 좋은 흙을 찾아 여행한다. 감응, 생명의 여행. 자기몸을 지렛대 삼아 100년, 200년, 나아가서는 1,000년을 시간과 더불어 자라나는. (...) 공공건축은 (...) 한시적인 과정임을 인식. 새로운 가치를 담아낼 준비를 하며 의미있고 소박하게! (...) "내가 나무 한그루 만큼만 건축을 할 수 있다면!" 지구의 삶 수용하며 온갖 생명의 집이 바로 나무.

 

306. 필자가 공설운동장만이 아니라 무주에서 한 수많은 일은 건축가의 새로운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조절자 social coordinator'로서의 역할을 한 것과 같다. 그래서 현대 건축가는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판단력 있게 조절하고 건축의 행위로 이행시키는 사람이다.

 

*무주를 말하다 ㅣ 좌담: 단순한 사례인가, 의미있는 참조인가 2007.12

 

321. "...희망 제작소가 '공강디자인학교'라는 것을 열었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공무원이었다. 이분들을 모시고 무주를 한바퀴 돌고 밤늦게까지 무주에서 함꼐한 적이 있다. 당시 공무원들이 상당히 감동했다고 들었는데, 여러 문제를 공무원한테만 미루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공무원들이 좋은 건축물, 그 이면에 담긴 철학, 건축가의 고민에 대해 충분히 알수있는 기회를 제공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박원순변호사)"

 

323.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보면 건축가가 개인이든, 관청이든 건축주와 계약을 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 다음에는 누구도 개입하고 참여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공공건축가가 있으면 여러 사회적 부분이 공공건축수행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내희 문화연대)"

 

338. "공평성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아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알려면 문화적 소양과 교양을 넓혀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게 어떤건지에 대한 사회적 공통감각이랄까,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것은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몇가지 기준을 마련하면 좋겠다.(강내희)"

 

*주민과 주인사이 ㅣ 정기용인터뷰(이유주현, 한겨레 기자)

 

353. <나에게 예술이란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의해 생겨나는 아름다움이며, 인간이 대지위에서 그 환경 전체와 더불어 보내는 생활속에서 얻는 감흥의 표현이다. 바꾸어 말하면 삶의 기쁨이 내가 말하는 예술이다.> 윌리엄 모리스

 

365. 무주프로젝트를 돌아보면서 이런 공공건물이 들어서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이라고 판단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쓰임새와 구조, 생김새 등을 협의해 결정지은 건축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양쪽의 관계가 오랜기간 지속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기용 선생은 이를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우선은 김세웅 전 무주군수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일종의 '전횡'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가 또한 아닌척하면서 은근히 가지고 있는 '폭력'이란게 있다. 건축가들은 이처럼 자기가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상황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한다. 사실 건축가들이야말로 그런 상황을 빠져나가는데 무시무시하게 빠른 사람들이다. 무주를 냉정하게 바라보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과 건축가들의 숙명적인 직업적 권력, 그 두권력이 우연히도 충돌하지 않고 결합된 것이다. 그 두 권력이 결합돼서 마치 새로운 사건처럼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모였을 때 공공건축물을 가능하게 한 걸 보면서 과연 공공건축이란 게 꼭 그렇게 나와야 하느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특히 김세웅 전 무주군수가 퇴임하고 난 뒤 취임한 새군수와 전혀 접촉이 업슨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