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여울 방/사진첩

똑똑한 게 뭐지?

 잔잔 2018. 3. 25. 22:25

 

 

일곱살이 된 이음이.

 

요즘 종종 어디서 듣거나 보고와서 뜻을 잘 모르는 단어를 물어본다.

오늘 저녁, 할머니집에서 저녁을 먹고와서 치카하고 동화책 한권을 읽었다. 

그리고 잘자, 인사하고, 우주만큼 혹은 우주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고 얼마쯤 지났을까.

주말엔 형아랑 노느라 낮잠 안자는 여울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이음이 갑자기 엄마 '영량'이 뭐냐고 묻는다.

 

 

 

영량? 명량? 명량하다?

응.

밝고 빛난다? ㅋㅋㅋ아무튼 좋은 뜻이야. 어디서 들었는데?

스피노는명량하고 빠르대.

명랑하고 빠르다고? 안 어울리는데...혹시 영리하고 빠르다고 안 했어?

아 맞아! 영리하고 빠르대.

ㅋㅋㅋ영리한  거는 똑똑하다고. 천재?

천재가 뭐야?

음 천재는 뭘 엄청 잘하거나 엄청 똑똑한 사람을 천재라고 해. 만들기를 잘하면 만들기 천재. 엄마는 중국어 천재가 되고 싶어ㅋㅋㅋ

그럼 스피노는 무슨 천재야?

엄마는 스피노 잘 몰라. 걔는 뭘 잘하는데?

달리기.

그럼 걔는 달리기 천재겠네.

엄마는 무슨 천재야?

음............엄마는 천재가 아닌 거 같아. 

(이음이가 무슨 질문을 더하고 얘기를 더 나눴는데 기억이 안난다)

 

꼭 천재가 될 필요는 없어. 적당히 재밌게 잘 하면 되지뭐. 이음이는 천재가 되고 싶어?

응.

무슨 천재?

똑똑한 천재.

아......똑똑한 게 좋아? 똑똑한게 좋은 이유가 뭐야?

이유? 이유가 뭐야?

음..이유는 있잖아. 이음이가 사탕을 좋아하잖아. 사탕은 달콤하고 맛있어서 좋아하지. 그게 이유야. 이음이가 사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탕이 달콤하고 맛있기 때문이지. 똑똑한 게 왜 좋아?

 

음..생각을 잘 할 수 있잖아. 내가 잃어버린 장난감이 어디 있는지 다 찾을 수 있고. 

아. 그래서 똑똑한 천재가 되고 싶어?

응.

그럼 이음이 이미 똑똑한데? 잘 찾잖아.

아니야. 못 찾은 것들도 있어.

그런 건 대청소할때나 이사갈 때 찾을 수 있을 거야.

응.

또 하고싶은 말 있어?

아니 없어.

그래 그럼 잘자.

응.

 

 

 

 

올 해 들어 자주 단어뜻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사실 그때마다 잘 설명해주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더 잘 설명해주고 싶다고 다음엔 단어사전같은 걸 빌려와볼까 생각하다가도 그때 지나면 또 바삐 지내다 잊어버리고.

내가 알고 있는 만큼 얘기해주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같이 찾아보자, 이렇게 해야지싶기도 하고.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단어들이 많이 있겠지.

아니면 느낌으로 몸으로 알고 있는데 설명이 어렵다고 해야할까.

 

사실 사전에 나와 있는 뜻풀이는 그냥 일반적인 뜻이고.

각각의 단어들의 의미나 정도는 그 단어를 말하는 사람들 수만큼이나 다양한게 아닐까.

 

'똑똑하다'라는 게 이음이한테는 잘 생각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내가 놀던 장난감을 어디에 뒀는지 잘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이음이는 자기가 놀다 둔 장난감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기억해내고 싶은 능력을 갖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똑똑하다'는 형용사는 '공부를 잘 한다'와 연결된다. 

사전을 찾아보니 두가지 뜻이 있다.

 

1) (사람이)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2) (무엇이) 또렷하고 분명하다.

 

그러니까 나는 첫번째 의미로 '똑똑하다'를 떠올렸고 이음이는 두번째 의미로써의 '똑똑하다'를 사용했다.

집에 있는 장난감들을 놀고 어디에 뒀는지 전부 똑똑하게 기억하고 싶어하는 이음.

 

 

뭔가 오늘의 대화를 기록해둬야지 하면서 쓰다가 보니 계속 길어지고 있다.

갑자기 신형철선생님의 '정확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뭔가 앞으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정확한' 표현을 해야할 것만 같기도 하고. 

또 이렇게 가끔씩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에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이음이나 여울이가 많이 커서 가끔 이렇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때 느낌이 새롭고 묘하다.

그래서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월대보름 소원지에 이음이가 쓴 소원.

진정으로 저 소원이 이음이에게서 우러나와 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이런 표현도 한다.

여울이는 올해 다섯살인데 네살때부터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아빠가 죽어서 하늘나라 가는 거 싫다고 얘기를 종종했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하늘나라 가기 싫다고.

 

 

얼마전에 이음이가 새꿈에서 자주 가는 산정산에 다 같이 처음으로 올라갔었다.

이음이의 소개로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왔었지.

 

 

그럼 여기서 오랜만의 육아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