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일기장

핑크팬더

 잔잔 2018. 7. 1. 17:46

 

빠밤, 빠밤, 빠바바바바바 바바바밤 빠바바바밤.

핑크팬더

 

 

서른번째 생일선물로 쌩쌩에서 핑크팬더 인형을 받았다. 

 

 

 

핑크팬더는 팬더가 아니라 퓨마라서 발음이 핑크팬서가 맞다고 한다. 블랙팬서처럼.  찾아보니 원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60년대에 만들어진 코미디영화도입부분에 나온 캐릭터였고, 영화제목이었던 핑크팬더는 핑크색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뒤로 캐릭터가 유명해져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한국에 들어올때 th발음을 그때는 '더'라고 했나보다. 그래서 얘 이름이 핑크팬더지만 분홍팬더는 아니다. 아무튼. 

 

 

왜 그는 나에게 핑크팬더 인형을 선물했는가.

오늘 일기 주제다.

 

여섯 살 때 였을까, 일곱 살 떄 였을까. 아무튼 초등학교 가기전의 내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커다랗고 기다란 핑크팬더 인형이 있었다. 누군가가 선물해준 것이라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인형과 관련해서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이맘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여름. 7월의 물더위.

나는 동생과 또 동네 친구들과 집에서 10분정도 떨어진 중학교 운동장에서, 제일 낮은 높이부터 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5개의 철봉이 나란히 있던 운동장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핑크팬더인형도 함께. 핑크팬더에는 모래가 묻으면 안되니까 제일 낮은 철봉에다가 긴다리를 묶어서 걸어두었다.

 

우리는 땅을 파서 두꺼비집도 여러개 만들고, 수로도 만들고 다리도 만들고, 운동장옆에 있던 수돗가에서 페트병에 물을 담아와 물을 부어 주며 거대 토목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땀흘린만큼 우리의 모래도시는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집중해서 거의 다 만들었을 무렵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핑크팬더인형은 그대로 철봉에 걸어두고서 말이다.

 

집에 돌아간 후 얼마 뒤 핑크팬더를 찾던 나는 기억을 더듬어 다시 중학교 운동장에 나가본다.

 

하지만 있어야할 그 자리에 핑크팬더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운동장에 서서 한 참을 울었다. 어렸을 때 기억은 거의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그 장면은 되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심지어 핑크팬더를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고 느꼈던 감정들까지도. 어떻게 해야하지. 어디로 갔지. 누가 가져갔을까. 막막함. 왜 두고 갔을까. 후회. 나쁜놈. 다시 내놔. 상실감.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딱히 기억이 없다. 잊어버리고 또 잘 놀았겠지.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한참동안 서서 울며 철봉만 보고 있던 막막하고 가슴아팠던 기억은  남아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쌩쌩에게 했던 것이다.

 

기왕이면 팔다리가 긴 핑크팬더인형이었으면 좋았겠다,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 얘기를 잊지않고 핑크팬더인형을 선물해줘서 고마웠다. 팔다리 긴게 진짜라고 투덜대는 나에게 던진 오글거리는 멘트도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서른이 되어 잃어버린 핑크팬더를 찾았다!라고 해두기로 마음속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