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빨랫줄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잔잔 2014. 6. 19. 20:39

(처음 용산에 집을 구해 살때 집들이 선물로 하루가 그려준 우리그림)

 

 

본격 연애를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되 이음이를 임신하고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이음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기억에 의하면, 우리는 싸운 적이 없다. 물론 연애초기의 특성상 서로의 공통점발견에 매진하며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매우 잘맞았다. 닮은 데가 너무 많아 싸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음이 태어나고 본격 육아에 돌입하자, 투덜거림, 삐짐, 사소한 다툼, 소리지르기, 화내기, 나가기 등등 점점 큰 싸움들이 한 번 두 번 세 번 일어나기 시작했다. 2년쯤 지나고 보니 거의 대부분의 싸움주제는 역시 육아,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육아라는 주제로 싸우는 주된 이유를, 쌩쌩은 나의 높은 기대수준과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쌩쌩의 행동에 대한 나의 막말이라고 꼽았다. 그러니까 육아문제로 싸우는 이유는 나때문이 라는 건가 참나, 하며 삐딱선을 타고 싶은 마음은 일단 접어두겠다. 쌩쌩의 입장에선 일정부분 맞는 얘기기도 하니까.

 

일단 첫번째 육아에 대한 나의 기대수준이 높다는 얘기를 짚어보자. 육아에 대한 나의 기대수준은 두가지 지점에서 살펴야 한다. 하나는 평상시에 멀쩡한 상태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애아빠로서 당신이 이랬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또 다른 지점은 너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일도 하고, 밖에도 돌아다니는데 나는 이렇게 집에서 애만 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왜 그것밖에 못하냐는 핀잔, 화를 내는 지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육아에 대한 진짜 나의 기대수준은 전자의 지점에서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살피고 고민하고 노력해줘야 한다. 후자는 알아서 능청스럽게, 넉살좋게 넘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가 되는 일은 참 멋진 일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엄마가 되는 일은 대화가 없는 평일의 섬에 고립되는 일을 동반한다. 때문에 생기는 피해의식은 아빠에게 몽땅 쏟아지는데...그것은 나도 어쩔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이음이랑 여울이랑 그런 얘기들을 나누기엔 내가 너무 진지한 엄마라 어렵다. 나도 노력은 해보겠다.

그런데 쌩쌩은 내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마구 화를 낼때의 요구사항, 육아에 대한 기대수준에 대해서만 잠깐 혹은 하루 혹은 며칠만 반응하고 말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좀 풀리지만 또다시 쌩쌩은 자기 본래모습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또 나는 육아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쌓아가다 또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악순환의 반복. 이것이 계속해서 같은, 비슷한 육아문제로 싸우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는 평상시에 멀쩡한 상태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애아빠로서 당신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정리해보겠다.

 

1. 나는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당신이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을 보면 조금씩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러다 저녁을 먹자는 데도, 잠깐만 이거좀 하고, 하는 말을 할 땐 이미 화가 잔뜩 나있는 상태다. 그 상태에서 이음이나 여울이가 나를 찾거나 징징되면 우리의 싸움은 시작되는 거다. 저녁이 되면 당신이 피곤한 것처럼, 저녁이 되면 이음이와 여울이 그리고 나도 피곤하다. 이렇게 까지 얘기하고싶진 않지만 이 문제적 장면은 그동안 너무 많이 연출되었기에 세세하게 말해야 겠다. 집으로 돌아와서 최소한 삼십분은 가족에게 집중해달라.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에 이음이의 놀이에 함께 해주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여울이의 뒤집기를 관찰하거나 기저귀를 갈아달라. 꼭 온 힘을 다해 애들이랑 놀아주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옆에 앉아 지켜보는 것, 대꾸해주는 것이라도 해달라.

2. 그리고 이음이의 목욕은 당신몫이다. 내가 해주는 것보다 더 잘 할 뿐아니라 애를 안고 머리감기는 일은 이제 내게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잔소리하기 전에 씻겨줘라.

3. 마지막으로 애들이 울거나 짜증을 낼때는 우선 애들의 상태를 살피고 이해부터 해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도 잘 안되지만, 그러려고 노력해보자. 애가 짜증내고 운다고 우리도 짜증내기 시작하면 또 싸움이 발생한다. 나는 아이들이 말을 잘 할 수 있을 떄까지는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기가 왜 짜증내는지 자기감정도 잘 모르고 조절도 못하는 아기들이니까 말이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짚고 가고 싶은 점이 하나있다. 나는 애가 울고 짜증내면 체력이 되는 한 이유를 찾고 도와주려고 애쓴다. 그러다 한계에 다다르면 나도 화를 내버리고 만다. 쌩쌩은 나의 이점을 지적한다. 참아주다 폭발하지 말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결국 화를 내게 되더라도, 그게 엄마로서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쌩쌩은 조금 해보다 그래도 계속 울면 애를 그냥 냅둬버린다. 음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또 나대로 화가 난다. 이 점은 육아관련 전문지식을 찾아봐야 할까.)

 

 

지금 내가 정리해볼 수 있는 육아에 대한 나의 기대수준은 이렇다. 다른 자잘한 것들은 내려놓겠다(그런데 이거 말고 다른 게 있었나). 하지만 최소한 저 세가지는 내려놓지 못하겠다. 썡쌩은 육아에 대한 나의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이 싸움을 줄이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면서 나에게 기대수준 낮추는 건 어렵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글을 써 정리하다 보니 기대수준을 낮추는 게 왜 어렵냐는 질문은 관념적이었다. 육아에 대한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인정해달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빠가 되기전의 당신의 생각과 행동을 아빠가 된 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니 요구하기 전에 아빠가 된 당신이 스스로 변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이래, 나는 받아주지 못하겠어, 방과후 애들하고 있을때도 이래, 라는 이야기로 자기자신을 인정해달라는 건 내게 설득력이 없다. 여자는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이면서 자연스레 엄마의 신체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아이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역시 남자는 아빠가 되어도 신체적인 변화가 없다보니 엄마보다 아이를 보는 것이 더 어려울것이다. 하지만 그러니 좀 더 애를 써봐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 섭섭해질 수도 있겠다. 기저귀를 빨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쌩쌩은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쌩쌩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멋지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남편의 역할이다. 육아에 지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쌩쌩은 정말 성실하다. 하지만 나는 아빠로서 쌩쌩이 이음이랑 여울이랑 눈맞추고 웃고 놀며 관계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물론 이부분도 쌩쌩은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하지가 않다. 해서 위의 세가지요구를 세세하게 적었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어렵다고 하지 말고 말이다. 아마 이부분에서 나의 기대수준이 높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한국과 러시아축구경기가 있던 아침에도 크게 한판 싸웠다. 그날은 이음이 생일이었다. 둘다 전날 밤 블로그활동으로 새벽 두시가 넘어서 잤지만 일찍 일어났다. 한 사람은 미역국을 끓일려고 한 사람은 축구경기를 보려고. 하지만 정말 그때까진 화가 안났다. 그런데 이음이가 울었다. 축구에 집중하느라 이음이를 울렸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물론 이맘때 애들은 원래 잘 운다. 그래도 생일이니 아침부터는 울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쌩쌩에게 마구 화를 냈다. 아저씨처럼 축구보면서 꿍시렁대지 말라는 둥, 방에 들어가서 보라는 둥, 가족의 기념일을 잘 챙기라는 둥 계속 화를 돋구었다. 그리고 마침내 쌩쌩도 폭발. 쾅!

 

('아이고 왜 내 생일날 싸우고 그러실까')

 

이음이의 생일 아침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이음이 밥을 먹이고 다시 누워버렸고, 쌩쌩은 기저귀를 빨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배가 고파진 나는 말없이 혼자 밥을 먹었다. 그리고 쌩썡은 출근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다. 쌩썡이 다시 돌아온 순간 우리 부부싸움은 끝이 났다. 어느 한쪽이 침묵의 시간을 끝내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웃음이 피식하고 나면서 일단 화가 풀린다. 그리고 얘기를 하면서 서로 마음을 푼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보통 어떤 상황에서 쓰는 거지? 많이 들어온 말이지만 새삼스럽게 그 뜻을 잘 모르겠다. 쉽게 화해한다는 의미에서? 아니면 물은 베도 베도 베어지지 않으니 끝이 없다는 의미에서일까? 아님 물은 칼로 베어도 다치지 않으니 부부싸움도 서로 다치지 않는 싸움이라는 걸까? 흠. 그러나저러나 나는 저 표현이 왠지 별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는, 생산성 제로의 활동이 아니다. 싸우면서 서로 함께 살 터를 만들어 가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물론 맨날 같은 걸로 싸우며, 휴 역시 소모적이야,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얘길하고 있지, 할때도 있지만 말이다.

 

'마당 > 빨랫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의 싸움에 대한 독백  (2) 2016.05.16
부부의 싸움에 대한 대화  (0) 2015.07.07
식기세척기?  (2) 2015.01.05
식기세척기  (0) 2014.06.29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  (0) 201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