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빨랫줄

식기세척기?

 잔잔 2015. 1. 5. 21:44

 

 

어느 저녁, 쌩쌩이 쌓여있는 하루치 설거지를 보더니 의자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식기세척기 살..?"

"아니!"

 

나는 생각도 안하고 바로 답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덩치큰 기계는 들여놓지 말자고. 그리고 얘기가 시작되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계들이라, 그럼 세탁기나 냉장고도 꼭 필요한 기계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 아니냐고 쌩쌩이 묻는다. 없어도 살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냉장고와 세탁기가 없는 삶이란.... 아, 그건.....참(내가 태어나기전부터 셋팅되어있었던 기계들은 논외로 하면 안될까..)

감사하게도 둘 다 집을 가꾸는 취향은 비슷하다. 될수있는 한 뭔가를 들여놓지 않고 공간을 그냥 넓게 두는 것. 미니멀리즘이라던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는 일을 쌩쌩은 즐거워한다. 최근엔 이음이장난감들을 최소화시켜놓았다. 그래서 쌩쌩이 식기세척기 이야기를 했을땐 그냥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고 나온 투정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진지하다.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해 관대해질 수도 있지 않겠나, 냉장고랑 세탁기는 되고 식기세척기는 안되는 이유는 뭔가...아이고.

 

 

그러니까 나는 앞 글에서 쌩쌩이 정리했던 기준들을 가지고, 우리가 식기세척기를 사지 말아야하는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하려한다.

 

*마당에 있는 빨랫줄 카테고리에는 함께 살면서 생각해볼 것들을 빨랫줄에 널어 볕도 쬐주고 바람도 쐬주자는 의미로 하나의 제목으로 두개의 다른 글을 올리는 곳이다.

 

 

 

 

 

그게 전자제품이든, 옷이든, 물건들을 선택하는 동안에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할까. 대체 몇가지 기준이나 잣대를 들이 밀고 있을까. 1. 관계 2. 에너지 3. 자본 4. 환경 5. 미학. 6 기술 (앞의 쌩쌩글 '식기세척기' 중에)

 

 

 

1 관계

사려하고 하는 물건과의 자기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그 물건을 통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면, 처음엔 잠깐 좋을수도 있다. 설거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순간의 달콤한 행복감이 찾아올테니. 하지만 좀더 자세히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땐 아닐게다. 세탁기와 냉장고처럼 이제는 삶에서 떼어내기 어려운 물건과 쌩쌩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쌩쌩은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잘 사용하기 위해 돌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물론 냉장고와 세탁기청소때문에 싸운적은 없다. 기계가 생기면 당장에 그일은 편해질수 있지만 그 기계를 관리해야하는 또다른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여기서 제2의 갈등은 불가피해진다. 왜냐하면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계의 오염도수준에 내가 좀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가습기가 그랬다. 나는 쌩쌩에게 애들을 재울때 수건을 적셔 널어 습도를 맞춰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귀찮아하던 쌩쌩은 가습기를 사자고 했다. 낮잠잘때, 밤잠잘때마다 습도조절을 위해 수건 서너개씩 물에 적셔 너는일에 지쳐가던 나도 결국 가습기 사용에 동의했고 우리는 가습기를 샀다. 삼일은 매우 잘썼다. 하지만 우연히 보게 된 가습기 세척에 관한 글때문에 가습기사용에 문제가 생겼다. 가습기가 습도를 높여주는 과정에서 세균이 잘 번식하는데 그걸 최소화하려면 매일 씻어 햇볕에 소독해주는 게 좋다는 글이었다. 습도를 편리하게 높일수 있었지만 그 기계를 관리하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쌩쌩에게도 얘기해줬지만 그냥 헹궈서 대충 쓰자고 한다. 결국 내가 몇번하다 차라리 수건 적셔 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가습기를 쓰지 않고 있다.

식기세척기는 음식물쓰레기가 걸러지는 필터와 배수구 그리고 내부를 청소해주어야 한다. 내부청소는 식초나 베이킹소다를 넣고 기계를 돌리면 된다고 한다. 식기세척기 역시 자주 청소하고 건조시키지 않으면 세균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있다.

충분한 자체 동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기계화시켰을 때 나는 자신 스스로에게 뭔가 불편한 감정을 갖는다. 고민끝에 결국 청소기를 샀고, 가습기를 샀지만 그들로 인해 집안일이 편해져 좋다고는 할수없다. 내 안의 불편한 마음이 여전하고 실제로 그 기계들의 도움이 그닥 편리하지 않으므로. 집안일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계가 늘어갈수록 함께 삶을 꾸려가는 우리의 관계는 과연 더 돈독해질수 있을까.

 

 

 

2 에너지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긴하나 비효율적일것이라 예상한다. 손으로 설거지를 했을 때와 식기세척기가 설거지를 했을 때 사용하는 물의 양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손으로 했을 때는 전기에너지가 사용되지 않으니 에너지사용부분에서도 손으로 그냥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또 식기세척기가 기름때라든 눌러붙은 밥풀을 얼마나 꼼꼼하게 처리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찾아보니 6인용식기세척기에 말라붙은 그릇을 불려서 세척하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87분간 식기세척기를 돌려야 한다.

 

(식기세척기 광고글을 보다 찾은 자료. 손설거지보다 물사용량이 적다고 한다)

 

 

 

3 자본

어떤 물건을 살때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 돈. 그렇다 식기세척기는 얼마일까. 대충 검색해보니 39만원부터 63만원까지 다섯대의 제품이 보였다. 흠. 식기세척기는 현재 매달 쓰고 있는 생활비내에서는 살수없는 물건에 해당한다. 돈을 따로 모으거나 모은 돈을 깨야하는데 그만큼 가치있어 보이지 않는다.

 

 

4 환경

식기세척기 한대가 만들어지는데 파괴되는 환경은 얼마만큼일까. 역시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핸드폰이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부품때문에 고릴라가 사는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니 식기세척기 역시 같은 방향내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5 미학

이부분은 굉장히 주관적인 부분이다. 사람들마다 어떤 물건을 살것인가, 할때 아마 제일 처음 보게 되는 부분아닐까 싶다. 그 물건이 놓일 곳에, 옷이라면 나에게 어울릴지 아닐지 살펴보는 것. 식기세척기는 우리집에 어울리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맨처음 아니라고 거절을 한 것도 사실은 그 기계의 아름답지 않음때문이었다.

 

 

6 기술

사람 대신 설거지해주는 기계, 그 기술은 지금 우리 가족에게 삶에 필요한 기술인가?  

 

 

 

 

 

 

최근에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다 쿠팡광고를 본적있다. 아주 예쁜 여자사람인 전지현언니가 나와서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세요?

예뻐지기 위해, 더 건강해지기 위해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기위해 전 삽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너무 예쁜 아이를 위해 사는 분도 계시겠죠?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든

쿠팡하나면 우린 모두 꽤 잘 삽니다.

살수록 행복해지는 여기는 쿠팡이니까요. 내가 잘 사는 이유, 쿠팡.

 

 

살수록 행복해진다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다. 젤 먼저 live의 살다를 떠올리게 하지만 광고는 buy의 사다, 뭔가를 살수록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멋진 광고문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펐다. 예쁘고 멋지고, 편리한 것들을 위해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는 부정할 수없는 우리 삶을 보여주는 광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 무언가 아주 작고 볼품없고 조금은 쓸모없는 것이라도 생산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뭔가를 사지 않고는 살아갈수 없어져버렸다. 때문에 계속 고민해야할 부분이겠지.

 

어떻게 살(buy)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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