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공책

<시간의 향기: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잔잔 2014. 11. 2. 09:22

필사하면서 생각해보려고 도서관 책 계속 빌리고 빌리고 또 빌려서 집에 두기만 하다 결국.

 

예전에 중국에서는 향인이라 불리는 향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읽기 시작했다. <피로사회>는 읽다가 말았는데,

연작느낌이다. 자신이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와 현대인들을 분석하고 문제를 찾고 해결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하는 것. 아무튼 나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마음에 담았다. 시간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아, 그리고 얼마전에 봤던 영화 <루시>도 이 책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루시가 인간, 존재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내뱉던 장면. 영화의 그 장면과 이 책이 연결되면서 시간이 곧 존재라는 시간에 대한 강렬한 하나의 이야기에 꽂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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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Revolution"이라는 개념 또한 원래는 전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혁명도 물론 과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귀환과 반복의 측면이 없지 않다. 원래 레볼루치오revolutio는 별의 운행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이 역사에 적용되면서 한정된 수의 지배 형태들이 순환적으로 반복됨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역사의 진행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하나의 원환으로 엮인다. 전진이 아니라 반복이 역사의 진행을 규정한다. 게다가 인간은 자유로운 역사의 주체가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시간에 대해 자유롭기보다는 내던져진 입장에 처해 있다. 혁명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별들의 운행 법칙에 종속되어 있듯이 혁명에 종속되어 있다. 시간은 자연적 상수들에 의해 형성된다. 시간은 소여, 즉 주어져 있는 사실이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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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에는 모두 서사적 긴장이 있다. 사건들의 특수한 연결이 시간을 형성한다. 이야기는 시간에 향기를 불어넣는다. 반면 점-시간은 향기가 없는 시간이다. 시간은 지속성을 지닐 때 서사적 긴장이나 심층적 긴장을 획득할 때 깊이와 넓이를, 즉 공간을 확보할 때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시간에서 모든 의미 구조와 심층구조가 떨어져 나간다면, 시간의 향기도 사라지고 만다. 시간을 붙드는, 붙들어 제어하는 닻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면, 시간은 안정성을 잃는다. 받침대에서 분리된 시간은 마구 내달리기 시작한다.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가속화는 생활세계의 다양한 변화를 촉발하는 원천적 과정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문제의 징후 또는 파생적 과정일 뿐이다. 안전성을 잃어버린 원자화된 시간, 붙들어주는 어떤 중력도 없는 시간이 가져온 결과인것이다. 시간은 내달려간다. 황급하게 마구 달려간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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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기술을 통해 인간은 땅에서 분리된다. 비행기와 우주선은 인간을 지구의 중력에서 떼어놓는다. 인간이 땅에서 멀어질수록, 땅은 더 작아진다. 인간이 땅 위에서 빨리 움직일수록 땅은 그만큼 줄어든다. 지상의 거리를 극복할 때마다 인간과 땅 사아의 거리는 커져간다. 그리하여 인간은 땅에 대해 소원해진다. 인터넷과 전자우편은 지리를, 아예 땅 자체를 증발시킨다. 전자우편에는 발송지를 알려주는 식별 표시가 없다. 전자우편은 무공간적이다. 현대적 기술은 인간의 삶을 땅에서 소외시킨다. 하이데거의 "토착성"철학은 인간을 땅으로 되돌리고 재소여화하려는 시도이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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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예전보다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도 뚜렷한 시간의 분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사건이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즉 경험이 되지 못한 채 빠르게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버리는 까닭에 더욱더 강화된다. 중력의 부재로 인해 사물들은 슬쩍 스쳐 지나갈 뿐이다. 아무것도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아무것도 결정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최종적이지 않다. 어떤 결정적 단락도 생겨나지 않는다. 더 이상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할수없다면, 모든 것이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등가의 연결가능성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즉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완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완결은 구조화된 유기적 시간을 전제한다.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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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있는'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받침대 없이는 자유도 없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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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이다.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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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없거나 지금 여기 있거나 둘중의 하나다. 더 이상 사이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란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이사으이 의미를 지닌다. 인생은 모든 사이가 제거되고 나면 그만큼 더 빈곤해진다. 인간의 문화에도 사이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축제는 종종 사이에 형태를 부여한다. 예컨대 강림절의 시간(크리스마스 전 4주간)은 사이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다.

세계가 온통 여기가 되어버림으로써 저기는 제거되고 만다. 여기의 가까움은 먼 곳의 아우라를 소멸시킨다. 여기와 저기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진 것과 미지의 것을,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을 분리하는 문턱이 사라진다. 문턱이 사라진 것은 세계를 전면적으로 가시적으로 만들고 이용 가능한 상태에 두고자하는 강박때문이다. 저기는 거리라고는 알지 못한 채 나란히 늘어선 사건들, 감각들, 정보들 속에서 소멸한다. 모든 것은 여기다. 저기는 더 이상 어떤 중요성도 인정받지 못한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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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역설은 바로 모든 것이 다 현재가 된다는 데 있다. 즉 모든 것이 지금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 그 결과 이미지, 사건, 정보들이 밀집한 더미가 생겨나고, 이는 사색 속의 머무름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채널을 막 돌리듯 세계를 폴짝 폴짝 돌아다니는 것이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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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와 향기는 광대한 시간을 거치며 과거 속 매우 깊은 데까지 뻗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이들은 최초의 기억들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단 하나의 향기에서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유년의 우주가 꺠어 일어난다. "마치 어떤 일본 놀이에서 작은 종잇조각들을 물이 채워진 자기 사발에 담그면 그때까지 서로 분간도 되지 않던 작은 종잇조각들이 물을 한껏 빨아들이며 벌어지고, 형태를 이루고, 물이 들고,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띠어, 꽃이 되고 집이 되고 온전한 모양의 알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 되는 것처럼, 우리집 정원의 모든 꽃이, 스완씨네 대정원의 모든 꽃이, 비본느 강의 수련이, 마을의 착한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작은 집들이,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그 근방이, 마을과 정원전체가 또렷한 모습을 띠고 손에 잡힐 듯이 내찻잔에서 떠올랐다." "거의 비현실적일 정도로 미량에 불과한 차 한 방울"이 기억의 거대한 건물이 들어설 수 있을 만큼 광활하다. 맛과 냄새는 인간의 죽음과 사물의 파멸을 뛰어넘는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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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무런 연광성 없는 점적인 현재로 붕괴하려하는 상황앞에서 프루스트는 다수의 관계과 유사성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직물로 대하한다. 모든 사물이 서로 얽혀있다는 것, 극히 사소한 사물에도 세계 전체와 교통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그저 존재의 안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조급성의 시대에는 지각을 심화할만한 시간이 없다. 오직 존재의 심층에서만 모든 사물이 서로 융화하고 서로 교통하는 공간이 열릴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존재의 친근성이 세계를 향기롭게 만든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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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향인香印이라고 불리는 향시계가 19세기까지 사용되었다.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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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향인에 대해 좌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도장문자와 같은 형태의 문양이 나무에 새겨져 있는데, 주연이 진행되는 동안 또는 부처 상 앞에서 그 속에 들어 있는 향이 타들어가면서 모양이 드러난다." 향인은 불이 다 타면 완전한 문양이 드러나도록 한붓그리기가 가능한 형태를 취한다. 주로 문자의 본이 담겨 있는 틀에 향 가루를 채워 넣는다. 그 틀을 들어 올리면 향으로 된 글자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한글자일 수도 있고( '福'자인 경우가 많다), 여러글자일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하나의 공안公案(선사가 제자들에게 정신적 훈련을 위해 제시해주는 매우 압축적인, 종종 수수께끼같은 경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가 나의 꽃들을 얻기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것은 어떤 향인에 새겨져 있는 수수께끼 같은 공안이다. 인장의 가운데 있는 꽃그림은 "나의 꽃들"이라는 단어를 대체한다. 향인 자체도 자두꽃 모양을 하고 있다. 불을 붙이면 불꽃이 인장에 새겨진 글자들을 한자 한자 따라 돌아다니며, 정확히 말하면 태워가며, 마치 글씨를 써가는 것처럼 보인다.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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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가만히 서있을 때, 정신이 자기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떄, 좋은 시간이 생겨난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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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그가 항상 시간이 있는 것은 시간이 곧 자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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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근대적 기술에서 존재를 탈소여화하여 조종하고 계획할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을 발견한다. 하이데거의 "존재"는 바로 과정의 대립자이다. 진행되는 과정은 끊임없는 변화를 함축한다. 반면 존재는 전진하지 않는다. 존재는 자기 안에서 진동하며 "동일한 것" 속에 머물러 있다. 그 점에서도 존재의 소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것은 머물러 있는 것. 위대한 것의 수수께끼를 간직한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갑작스레 찾아들지만, 오랜 성장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언제나 동일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 단순한 것의 축복은 그 속에 숨어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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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의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역할, 의미, 가치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하이데거는 바로 이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의미를 고안해내기 위해 과도하게 애쓰는 태도에서 깊은 권태의 징후를 발견한다. "우리는 왜 우리 스스로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는가? 즉 존재의 본질적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가? (...) 그리하여 우리는 종국에 가서는 깊은 권태가 현존재의 심연 속에서 마치 침묵의 안개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그런 상황에 처할 것인가?" 깊은 권태를 하이데거는 오늘날의 시대적 징표로 해석한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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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결연한 시선"이 긴 것, 느린 것을 보기에는 너무 근시여서 긴 시간의 향기를 느낄 줄 모른다는 것, 과도하게 고양된 주체성이야말로 깊은 권태가 생겨나게 한 주된 원인이라는 것, 더 많은 자기 생각보다는 더 많은 세상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행동보다는 더 많은 머무름이 권태의 저주를 꺠뜨릴 수 있다는 것을 꺠닫는다.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