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 76

외눈박이

자고 있는 이음이의 손이 너무 귀여워서 그리기 시작했었다. 살짝 주먹 쥔 손. 손가락으로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데 귀여운 손의 느낌을, 잡아주고 싶은 손의 느낌을 그려내지 못했다. 그래서 괜히 손 말고 딴데다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불과 이음이 내복 무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불무늬도 이음이 내복 무늬도 어렵지만 손이랑 눈, 코, 입 그리기는 정말 어렵다. 감은 눈그리기도 어려운데 뜬 눈은 오죽할까. 흠 결국 위치도 애매하게 잡아서 가운데 눈 하나 있는 외눈박이 얼굴이 되었다. 연습이 필요하다!

23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2011년 7월 공산당 글짓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어렵다. 그건 결국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같은 게 아닐까나. 그래서 질문을 좀 바꿔 거기에 답해보고자 한다. 흠흠. 일단 내가 말하는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치환하기엔 좀 부족하다. 누군가의 정의에 따르면 ‘일’이라 함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작더라도 세상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이 있고, 또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며,....음 그 뒤는 기억이 안 난다. 책 참고. 아무튼 삶과 괴리되지 않는 그런 '일'을 하며 살아가고싶다. #학교 내가 뭔가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이후로 만난 첫 번째 어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그 ..

예술가들의 작업노트

2년전에 서점에서 란 책을 들춰보다 노트를 사서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두달정도 하다가 말았다. 노트에 써놓은 것처럼, 무언가를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는데도 보이는 것을 다 그리지 못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보이지 않는 걸 그리는 일도 동시에 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재밌다. 무언가를 자세히 오래도록 쳐다봐야하는 일도 좋고. 다시 스케치북을 펼치고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20 학교수업, 혹은 교육에 관한 고찰

고등학교에서, 나는 도서부였다. 그래서 도서실에 있는 일이 많았었는데,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혼자 공부해도 되지 않을까?’ 고2때는, 책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때로는 도서실 구석에서 책을 읽으면서 수업에 들어가지 말까하는 충동을 겪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에게 수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해 받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간의 학교생활동안 선생님들께 받아온 사랑이나 관심을 무시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수업이란 대체로 나에게 그런 의미로 더 강하게 인식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로 하여금 학교 수업이 이래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신 분이 계셨다. 우리학교 작문선생님이셨다. 1.수업을 왜, 들어야 하는 것일까..

21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미학오디세이>를 읽고

처음 생각한 제목은 이었다. 그런데 그 ‘예술적인’이라는 말에 내가 걸려 넘어질 것 같아서 그냥 영화 제목 그대로 적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진 못했다. 1 2007년 6월 22일, 우리 반은 기말고사를 딱 일주일 남겨두고 디데이를 세고 있었다. 그 때, 학교에서 나는 반장과 최다지각생 그리고 자칭상담사를 맡고 있었다. 입학 후 1년간은 ‘학교 선생님’을 꿈꾸며, 착실히 공부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학교 회사원’ 같은 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야자를 빼고 태권도 도장에 다녔다. 반장은 1학년 때 한 번 했더니 그냥 그대로 쭉 하게 된 거였고, 최다지각생은 집에서 학교 종소리를 듣고 나가는 재미에 빠져서 그렇게 되었다. 중요한 건, 자칭상담사다. 나는 ‘학교 회사원’ 같은 건 되..

22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논리적인 것들에 맞서려면

너는 열 시간 동안 침대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해.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모랑 이모부는 네가 밤 아홉 시부터 적어도 열 시간 동안 자기를 바래. 그건 오로지 너를 위해서야. (…) 좋아, 내가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네가 알아들을 줄 알았다. (25-26) 홍역에 걸린 동생과 떨어져 이모네 집에서 지내게 된 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매우 못마땅하다. 이모네는 정원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톰은 고장 난 괘종시계가 열세 번 종을 치는 걸 듣게 된다. 혹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시간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톰은 시계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가 주방 뒤쪽 문밖에 히아신스향이 나는 멋진 정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톰은 정원이 없다고 거짓말 한 이모를 혼내줄 겸해..

<맨스플레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의 발견

성평등강사단 교육을 받고 온 쌩쌩이 도서관에서 페미니즘관련 책들을 많이 빌려온다. 그중에 얇은 책 하나를 골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가 여기저기 쓴 아홉개의 글이 묶여 있는 책이었는데, 그 중에 첫번째 글이 책 전체의 제목이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는 제목의 글. 이 글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밑거름이 되었다고. 맨스플레인은 맨MAN과 익스플레인EXPLAIN의 합성언데, 설명하는 남자, 설명남 그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면, 맨스플레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꼰대, 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났다. 꼰대라는 말은 내게, 어원을 잘 모르는 이상한 느낌의 단어라 거의 쓴적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꼰대, 라는 말의 이미지도 역시 맨이다. 주로 올드맨 . 어..

잔잔 방/공책 2015.08.09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나카자와 신이치 - 중요한 백업-

留Ž 수정을 하고 저장을 하는데 저 하나의 한자를 남겨두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순간 백업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서웠습니다. 티스토리에 문의를 했더니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복원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저 한문의 뜻을 찾아보니, 1. 머무르다 2. 정지하다 3. 뒤지다 4. 지체하다, 더디다 5. 늦다 6. 붙잡다, 만류하다 7. 억류하다 8. 죽이다 9. 다스리다 10. 기다리다 11. 오래다, 장구하다 12. 혹, 종양 13. 별 이름 백업하세요. 아무래도 더디다. 지체하다.. 머 이렇게 말을 하고 글 전체가 사라져버린듯 합니다. 아무래도 저장하면서 한참 지체되더니 저 하나의 한자를 나두고 사라져버렸으니.. 논밭이 있으면 그곳에 머물러서 경작한다에서 한자를 해석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뜻을 지..

잔잔 방/공책 2015.07.20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작년에 남경태선생님의 를 재밌게 읽고 중국사를 다시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갔다가 찾아온 책. 예전에는 잘몰랐는데 요즘엔 역사책이 참 재밌다. 특별히 중국사는 고대신화부터 현대사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려고 한다. 한문공부를 계속해보고 싶어서. 그래서 이 책의 자매편인 도 빌려와 보고 있다. 이 책이 소소하게 재밌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인물이나 지명을 중국식발음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공자대신 쿵쯔라고 쓰여있는데 괜시리 공자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발음이랄까, 피식하면서 웃음도 나고. 검색하다 보게 된 글 한 토막 조관희 교장선생님은 현재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입니다. 전공이 중국의 고대소설 연구이지만(한국중국소설학회 회장 역임), 오히려 중국 여행 전문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여행을 ..

잔잔 방/공책 2015.01.14

jtbc드라마<유나의 거리>'김창만'이 사는 법

0 내 주변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잘 안본다. 막장이고 뻔하고 맨날 기승전연애인 사랑타령에다 등등. 모든 한국드라마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비판에 어쨌든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드라마를 즐겨본다. 나의 드라마역사는 로 시작되었다. 내용은 잘 기억안나지만 거기 나온 김지수언니를 따라 옷입는 것에 나름 열중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튼 중고딩때는 집에서 방송삼사 월화수목주말드라마와 단막극, 방학땐 아침드라마, 저녁드라마까지 챙겨보기도 했다. 그리고 스무살때부터 서울 살면서는 못봤다. 스물 이후부터 내가 사는 곳엔 텔레비젼이 없었고 세상밖에 던져진 나는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래도 보고싶은 드라마는 챙겨서 봤다. 나는 드라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리고 또 여..

노란샤쓰의 사나이

하도 많은 주말들을 도서관가는 길에서 보냈었기에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난다. 그날도 이음이랑 쌩쌩이랑 같이 걸어서 50분쯤 걸리는 고덕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지쳐 돌아오는 길도 걸어서 올수가 없었다. 정류장도 멀고 한번에 가는 버스도 없고 해서 택시를 탔던 날이었다. 한영외고를 지나 언덕길을 내려가 오래된 나무들이 서있는 가로수길에 들어섰다. 이제 직진해서 우회전하면 금방 집이 있는 골목이 나온다. 그런데 그 때 택시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알고 있는 노래였지만 원래 가수가 그 시절에 부른 건 처음 들은 것 같았다. 목소리도 좋고 가사도 좋고 약간은 지직거리는 오래된 음질도 느낌이 ..

잔잔 방/기타 2014.11.15

<시간의 향기: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필사하면서 생각해보려고 도서관 책 계속 빌리고 빌리고 또 빌려서 집에 두기만 하다 결국. 예전에 중국에서는 향인이라 불리는 향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읽기 시작했다. 는 읽다가 말았는데, 연작느낌이다. 자신이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와 현대인들을 분석하고 문제를 찾고 해결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하는 것. 아무튼 나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마음에 담았다. 시간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아, 그리고 얼마전에 봤던 영화 도 이 책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루시가 인간, 존재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내뱉던 장면. 영화의 그 장면과 이 책이 연결되면서 시간이 곧 존재라는 시간에 대한 강렬한 하나의 이야기에 꽂혀버렸다. - "혁명Revolution"이라는 개념..

잔잔 방/공책 2014.11.02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과연

제목은 별로였다. 몰락선진국이라는 말도, 옳다는 말도 별로. 그런데 책 속에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쿠바에 대해서는 사실, 느긋한 사람들, 음악이 나오면 거리에서건 어디서든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일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커피향좋은 나라랄까, 그런 낭만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쿠바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일단은 책에서 재밌었던 부분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옮겨두었다. 쿠바역사관련 책을 읽으면 다시 정리해서 라디오에 글을 올려야지. 2 비바람을 견뎌내는 집을 만들다 ●영화 , 가 상영된 적도 있어서인지 쿠바가 주목받고 있다. 41 ●주택문제에 열중하는 NGO인 해비타트 쿠바의 건축가 테레사..

잔잔 방/공책 2014.07.10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이 책에는 마을만들기 사업이라든가, 지역활동이라든가 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내공을 가진 일곱명이 네 번의 만남을 통해 나눈 이야기와 글들이 엮여있다. 처음에 몇번은 조금씩 힐끔거리다 엊그제는 하루종일 손에 쥐고 밤늦게까지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덮고서는 쌩쌩에게, 우리 뭔가 해보자, 라고 했다. 내가 여기에 살고있음으로 인해 이곳이 좀 더 나은 곳이 되도록 하는 일들을 찾아보자고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살면서 어떤 문제들을 만났을때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말고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해보자는 거다. 그 과정들을 겪어보는 것! 예를 들어, 내가 어제 이음이와 집앞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손을 씻으려는데 거기에 있는 수도의 꼭지가 없어져 물을 틀 수가 없었..

잔잔 방/공책 2014.06.29

영화 <겨울왕국Frozen>과 가족에 대해

0 원래는 영화 〈로얄테넌바움〉을 보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한번봐서는 어려워 영화를 다시 보고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는데 일상에 치여 결국에는 짧은 메모와 함께 저어기 한구석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주말에 쌩쌩이 요즘 인기많다는 디즈니만화영화를 보여줬다. 이음이랑 놀면서 보느라 멈췄다가 다시 보기를 여러번. 그래도 끝까지 봤다. 디즈니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에 영화에 선입견이 먼저 생겼을까. 보면서도 흥, 보고나서도 흥, 이었다. 이제 늙었나보다, 이걸 왜 보자고 한거야, 재미도없고 감동도 없네하면서 아무렇게나 지껄여지는대로 평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라디오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화ost들이 줄기차게 나오는 거다. 그전에도 나왔지만 그때는 그게 겨울왕국 ost인지 알지..

내가 하고 싶은 일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버튼이 그린 동화책제목이라고 들었는데 읽어보진 못했다. 그냥 갑자기 그 책 제목이 생각났다. 한동안 내 속의 굴을 파고 들어있었더니 그랬나보다. 왜 굴을 파고 들어가 앉았나 2013년이 되고 새해첫날부터 결혼식준비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내 인생의 큰 잔치니까 열심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이음이 데리고 쌩쌩이랑 끙끙댔다. 처음해보는 거니까 당연히 서툴고 비어있는 데 투성이겠지, 그 부분들은 좋은 사람들과 웃음으로 채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준비했다.그리고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고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바닷가앞 숙소 한군데 정하고 바닷가산책하고 조금씩만 돌아다니기)쉬다가 서울로 잘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고나서부터 뭔가 무기력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