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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버튼이 그린 동화책제목이라고 들었는데 읽어보진 못했다. 그냥 갑자기 그 책 제목이 생각났다. 한동안 내 속의 굴을 파고 들어있었더니 그랬나보다.

 

 

왜 굴을 파고 들어가 앉았나

 

2013년이 되고 새해첫날부터 결혼식준비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내 인생의 큰 잔치니까 열심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이음이 데리고 쌩쌩이랑 끙끙댔다. 처음해보는 거니까 당연히 서툴고 비어있는 데 투성이겠지, 그 부분들은 좋은 사람들과 웃음으로 채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준비했다.그리고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고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바닷가앞 숙소 한군데 정하고 바닷가산책하고 조금씩만 돌아다니기)쉬다가 서울로 잘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고나서부터 뭔가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준비했던 무언가가 끝난 사람의 심정이겠거니 하며 축 늘어지는 몸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지냈다. 결혼식 바로 다음달에 있는 이음이 돌잔치준비를 겨우겨우해가면서. 그러던 어느 날 자주가던 도서관까지 유모차를 끌고 걸어갔다 왔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거다. 집앞에 거의 다왔는데 쌩쌩과 유모차를 앞서보내며 나는 세월아내월아 하며 걸음을 걸어 집까지 기어올라갔다. 이상했다. 아주 규칙적이던 생리도 며칠 미뤄지고 있었다.

두번째 임신이었다.

호르몬의 변화와 몸이 무거워지면서(임신초기엔 물리적 무게보다 정신적무게같은게 늘어나는 거같다) 우울에 빠졌다. 이음이를 임신했을 때도 나는 임신초기때 방에 쳐박혀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든가 추억은 방울방울류 같은 만화영화들을 주구장창 봤었는데, 하며 지나간 그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이번엔 조금 달랐다. 옆에는 낮잠잘때를 빼곤 한시도 아주 깊은 시름속으로는 엄마를 보낼 수 없는 이음이가 징징깽매깽매거리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런 이음일 데리고 매일 놀이터에 나가 걷고 모래놀이를 하며 오후를 보냈기 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우중충했다. 매일한자외우기도 엄청 밀렸고 자기앞의 생이나 존재의 세가지거짓말 같은 우울한 소설책과 세계대전이후 인간과의 일상적관계를 정리하고 물건들과만 관계를 나누며 지냈다고 고백하는 헤르만헤세의 정원일기같은 것을 머리맡에 두고 읽고 있었다.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막는 방법

 

그렇게 여러날을 보내고 있다가 우연히 지난 달에 예약구매를 해두었던 매실5kg이 집으로 배달됐다. 모두가 잘 먹는 매실효소를 만들려고 주문했던 것인데 매실말고는 준비해둔게 없었다. 그래서 일단 배달된 매실상자를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꼼꼼하게 몸을 씻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우중충한 기운들을 떼어내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오래오래 씻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몸이 한결 가벼워진것 같았다. 

그리고 매실효소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설명에 보니 매실효소를 만들려면 매실을 꼼꼼하게 손질해야 한단다. 매실에 남아있는 꼭지 끝부분도 젓가락이나 이쑤시개를 이용해 살살 빼줘야 하고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는 것들은 따로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오래두면 물러지고 상처나는 것들이 더많아지므로, 수확해서 바로 손질을 하고 효소를 만드는 게 좋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주방에 앉아 매실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젓가락 한짝으로 남아있는 매실꼭지 부분을 쏙쏙 빼주는데 계속 매실을 만지다보니 달큰한 매실향이 코 주위에 돌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손질하던 매실들에 마음을 뺏긴 나는 요것들을 얼른 효소로 만들어 놓고 싶어졌다. 해서 약간 무리하더라도 그 밤에 효소만드는 일을 끝내고 싶었다. 나는 쌩쌩에게 이음을 맡기고 마트로 향했다. 효소를 만들어 담아둘 커다란 유리병을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트마다 유리병은 동이 났다. 매실효소를 만드는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큰 마트를 찾아 나갔다. 대형마트엔 유리병이 남아있었지만 내게 필요한 10L짜리는 다팔리고 8L짜리만 남아있었다. 매실5kg을 효소로 만드려면 설탕5kg이 들어간다. 별수없이 나는 8L짜리 유리병두개와 설탕5kg과 소주한병을 카트에 실었다. 그리고 내려오다가 보이던 생수6병을 고민끝에, 역시 카트에 실었다.

하지만 카트에 실었던 그 물건들을 들고 마트문을 나서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지나가던 사람 누가보더라도, 아니 저렇게 무거운 걸 한번에 들고 가다니, 무식하게 힘만 쎈 아줌마로고 쯧쯔, 하며 혀를 찰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었다. 매실손질을 하며 지나치게 의욕을 불태운 탓이었을 게다. 겨우 택시를 잡고 집앞에 와서 그것들을 4층까지 올리는데 나는 내가 가진 모든 힘에다가 어디서 왔는지 모를 힘까지 더했다. 전화해서 쌩쌩을 부를까 했지만 이음이까지 데리고 나와야할거 같아, 그리고 그냥 내가 할수도 있을거 같아 강행했다. 초인적인 힘을 써가며 헉헉거리며 현관을 열었다. 역시나 쌩쌩에게 한 소리를 들었지만 오랜만에 불끈 힘을 쓰고 헉헉거렸더니 그조차도 몸을 가볍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뭐 헬스클럽에서 하는 운동중에도 이런 식으로 순간힘을 발휘하게 하는 운동들이 있다지, 없음 말고. 아무튼 그렇게 매실 효소만들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유리병을 닦고 소주로 소독한 뒤에 그 안에 매실과 설탕을 켜켜이 담았다. 이제 3개월이 지나면 매실건더기는 건져내 짱아찌담아 먹고, 매실액만 따로 담아 3개월 더 숙성시키면 매실효소가 완성된다!

 

그날 밤, 만들어놓은 두병의 매실효소를 흐뭇하게 보다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굴 속에서 나와 햇빛을 쬐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곰곰생각해보았다. 무엇이 나를 굴 속에서 나오게 했을까. 정리해보니 아래 세가지 정도가 있었다.

1 몸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씻기

2 좋은 향이 나는 단순작업하기(매실, 오미자, 미나리, 냉이손질 등)

3 초인적인 힘쓰기(무거운 유리병들고 낑낑대기, 가구배치바꾸기 등)

 

팀버튼의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에서 굴소년이 어떻게 우울한 죽음을 맞이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걔가 굴 속에서 나왔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위의 세가지 방법이 매우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글을 써 정리해둔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막는 방법에 대해 정리하며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저어기 어딘가에 소중히 넣어 두었던 내가 하고싶은 일, 꿈에까지 미친다. 웃기지만 그래도 나름 내 꿈에 대한 아이디어니, 상상하며 기록해두기로 한다.

 

1 공간

열아홉살때 이미 이름공개식을 해두었던, 하지만 아직은 나의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곰곰생각하고 꿈실꿈실움직이고 찌르르감동받기를 계속:하는 공간이란 줄임말 곰꿈찌: 곰국집이냐고 놀리던 친구도 생각난다. 그때는 전혀 그 공간에서 먹는 활동이나 음식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곰국집이냐 놀리던 그친구에게 예지력이 있었던 걸까, 아무튼  이제 그 공간에서 중심은 주방이다. 다른 소규모 공간들이 더 있어도 좋지만 커다란 주방만 하나 있어도 상관없다. 이 주방의 주메뉴는 청국짱과 떡뽀끼 그리고 비빔빱이다. 이 주방에는 넓은 싱크대와 충분한 수납공간 그리고 좌식 테이블과 방석들이 놓여있다. 테이블의 크기는 모두 제각각이고 어떤 것들은 접을 수도 있다. 방석들의 모양과 크기 역시 제각각. 에어컨과 온풍기는 없지만 커다란 창문이 적재적소에 있으며, 보일러를 틀면 뜨듯해지는 바닥이 있다. 여럿이 같이 쓰는 곳이라 공용물건수납장 외에 다른 수납장은 없다.

주방에서 나오면 마당이 있다. 뭔가를 널어 말릴 수 있는 빨랫줄도 길게 있고 크진 않지만 텃밭으로 쓸 수 있는 흙땅이 있다. 나는 이 공간의 지기다.

 

 

2 사용자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다. 자신이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밥을 짓고, 나눠 먹고, 힘이 남으면 뭔가를 할 수 있다. 특히 굴을 파고 들어가 있는 청소년들의 아지트나 적어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3 활동

일단 모이면 밥을 해 먹는다. 밥을 해 먹기 위해 들어가는 모든 준비들이 공간활동의 첫번째가 된다. 그리고 그 외의 활동들은 자유롭게 기획해 할 수 있다. 잡다한 활동들을 지지한다. 앞서 정리한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막는 방법 중 두가지-좋은 향이 나는 단순작업과 초인적인 힘쓰기-는 아마 이 공간에서 자주 하게 되는 활동이 될 것이다. 내공이 깊어지면 메주도 만들고 청국장 띄우기도 도전해본다. 된장, 간장, 고추장등의 기본 양념들과 푹 삭혀야 맛나는 장아찌류, 효소나 차종류도 도전해볼 수 있다.

 

 

4 더 큰 그림

커다란 주방이라는 공간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구체적이면서 좀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더불어 운영방법에 대한 고민도 깊이 있게 해보자. 물론 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겠지만.

 

 

5 왜?

나는 왜 이런 일들을 하고 싶어 할까?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요리를 하며 무척 행복해하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밖에서 먹는 유혹적인 음식들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 있고 집밥의 담백함을 좋아한다. 올해들어 새롭게 도전한 음식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의 맛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던 점도 요리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거 같다. 하지만 역시 설거지를 비롯한 살림살이 손질이 귀찮을 때가 많다. 매일 먹고 쓰는 주방살림살이들과 식재료의 손질이 요리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십대를 보내며 가진 꿈,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이 이십대가 되고 애를 낳고 결혼을 하며 살다보니 그 공간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청소년들과 함께 해보고 싶어진것 뿐이다. 이런 말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밥을 해먹는 일련의 과정과 활동들에 어떤 힘이 있다고 점점 더 믿게 되고 있다.

 

구체적인 것들이 더 떠오르면 추가하기로 하고,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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