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책장 5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2

19 나의 졸음은 질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鳥致院) 70 그러나 기다림이란 마치 용서와도 같아 언제나 육체를 지치게 하는 법 (포도밭 묘지1) 72-73 묻지 말라, 이곳에서 너희가 완전히 불행해질수 없는 이유는 神이 우리에게 괴로워할 권리를 스스로 사들이는 법을 아름다움이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포도밭 묘지2) 92 오래지 않아 3 우리는 완전히 그를 잊었다. 그는 그 해 가을 우리 마을에 잠시 머물다 떠난 떠돌이 사내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꾸며낸 이야기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저녁마다 연필을 깎다가 잠드는 버릇을 지금까지 버리지 못했다. (집시의 시집) 93 살아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

거실/책장 2016.05.19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이라는 제목의 기형도 시집을 읽고있다. 집 책꽂이 위쪽에 꽂혀있었는데 라디오를 듣다가 갑작스레 꺼내들었다. 1960년에 태어나 1989년에 죽은 시인.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빈방에 가둔 시인. 어릴 때 아버지가 아프셔서 어머니 혼자 생계를 꾸리셨는데 엄청 가난했다고 한다. 아마 어렸을 때 빈방에 홀로 있던 시간도 많았을 거라, 다른 이들이 느끼는 것 만큼, 슬픈 사랑을 빈방에 가두어놓는다는 이야기가 그에게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인생을 증오하며,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시에서 그는 말한다. 어둡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어두운 인물들이지만. 컴컴한 마음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시들이 내게는 밟혔다. 그의 시에는 폐렴으로 둘째를 잃은 ..

거실/책장 2015.08.25

<씨앗건강법> 그리고 <내가 바라는 세상>

씨앗 건강법 노명순 문짝 떨어지고 기왓장 날라가는 것이 꼭 실밥 툭툭 터져버린 이불호청 같은 집이여. 그란디, 이 작것이 요새는 새댁 꽃이불 꿰메 놓은듯 개나리꽃앵두꽃살구꽃, 색색을 골고루 다 피우며 한참 물이 올랐더랑께, 또 겨우내 닭오리거위새끼들 씨알갱이 하나 귀경 못했는디, 따땃한 봄된께 울타리, 말캉, 폭신 옴팍헌디만 보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아랫도리 까고 소락대기 지르며 희고 둥근 씨앗을 대책없이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이 참말로 가관이더란 말이여, 다 살은 듯 얼음 백혀 자빠졌던 파배추밭도 연초록 여린 대궁 뾰족이 밀고 나오는 것이, 오메! 요 이쁜 것들! 막말로 지난 시한에는 요놈의 집구석 이사를 가볼까, 때려 부숴볼까, 허는 맴도 먹었는디, 인자 봄도 왔응께 기냥 저냥 양단 꽃이불 속인양 ..

거실/책장 2014.06.19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녀의 미소 때문에.. 그녀의 모습.. 그녀의 부드러운 말씨... 그리고 내 맘에 꼭 들고 힘들 때 편안함을 주는 그녀의 생각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나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랑은 그렇게 잃을 수도 있는 법. 내 뺨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픈 연민 때문에 사랑하지도 말아 주세요. 당신의 위안 오래 받으면 눈물을 잊어버리고, 그러면 당신 사랑도 떠나갈 테죠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이 언제까지나 사랑 할 수 있도록. -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

거실/책장 2014.06.19

정희성 -저문강의 삽을 씻고-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한다. -정희성-

거실/책장 201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