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여울 방/사진첩

두번째도 서툴다

 잔잔 2014. 7. 10. 00:16

 

조산원에서 여울이를 낳았던 과정과 느낌들을 정리해보려고 이렇게 제목을 붙여봤다.

 

 

두번째도 서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출산뿐아니라 삶의 많은 일들이 그러했던 것 같다. 늘 두번째도 서툴었다. 그런데도, 한번해봤잖아, 처음보단 잘하겠지, 하는 생각들을 하며 괜히 괜찮은 척 하곤 했다. 실은 처음보다 더 떨린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번해봤으니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도 좀 생겨버린 두번째의 많은 일들에, 갑자기 위로를 해주고 싶어진다. 사실은 처음이나 두번째나 어쩌면 세번째도 고만고만 어려울지도 몰랐을 일이다. 그렇게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숱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야 내 몸에 익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그렇다고 출산의 과정을 그렇게 많이 경험하며 몸에 익혀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엄마는 매번 떨고 긴장하고 서툴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좀 더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아가를 맞이하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음이를 낳기전엔 요가도 하고 서예도 하면서 그런 훈련을 나름대로 했다. 하지만 출산과정에선 그런 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뭐랄까, 휩쓸려 갔다고 해야할까. 정말 힘들었지만 사실 그렇게 아픈줄 몰랐다. 마지막엔 기절해버리기도 했고. 그런데 여울이를 낳을땐 끝까지 생생하게, 아팠다(쌩쌩은 이음이를 낳은 게 오래전일이라 이음이때가 덜 아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라고 말한다). 정말로 아팠다. 두번만 힘을 더 주면 나오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냥 의식을 놔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아무튼 진짜 아팠다. 옆에 다른 엄마들은 둘째는 금방 낳던데, 나는 왜이리 오래걸리고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도 했더란다. 대체 이토록 처음보다 더 아픈 두번째 과정을 통해 삶이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조산원에서 지내는 일주일간 계속 했다.

 

 

 

2월 15일

아침, 진통이 시작됐다. 전날에도 잠깐씩 아팠는데 아침부터는 꽤 주기적으로 아파왔다. 하지만 아직이다. 밥을 먹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온 식구가 나섰다. 고덕평생학습관에서 아빠는 책을 반납하고 빌리러 가고 나는 이음이랑 어린이실에 앉아 동화책을 봤다. 진통이 왔지만 참을만 했다. 그리고 다시 강일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반납하고 점심을 먹으러 홍짜장으로 갔다. 아, 이음이 낳기전엔 힘을 비축해둔다고 족발을 시켜먹었는데 이번엔 짬뽕이 먹고팠다. 짬뽕을 먹는데도 진통이 온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저녁이 되자 진통간격이 꽤 많이 줄어들었다. 조산원에 전화를 했다. 조산원은 부천에 있어 택시타고 가도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 둘째는 속도가 더 빠르니 30분간격이라도 와도 괜찮다고 하셨다. 짐을 챙기고 좀더 기다렸다가 밤 열시에 택시를 불러 부천열린가족조산원으로 갔다.

열한시 반에 도착. 짐을 풀고 누웠다. 15분 간격으로 오는 진통이 강렬하게 몸을 훑는다. 낯선곳으로 온데다 엄마옆에 붙어 있지도 못하게 된 이음이는 울다지쳐 옆방에 잠들어버렸다.

 

2월 16일

그리고 나는 밤새 진통과 씨름했다. 짐볼에 앉아 골반도 돌리고 걷기도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아, 누가 둘째는 빨리 나온다고 한거야 윽. 그리고 새벽이 되어 기진맥진. 결국 아침밥까지 먹었다! 무려 3분간격 진통을 하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몸이 밥을 원했다고 할밖에. 무지 아프면서도 이걸 먹지 않으면 낳을 힘이 없을 것만 같았다고 할까. 아무튼 8시에 아침을 먹고 나니 진통은 더더더더욱 강렬하게 왔다. 그래도 좀처럼 나올 기미가 안보여 결국 나는 또 울면서 쌩쌩의 양손을 부여잡고 걷기 시작했다. 이음이때도 그랬었지. 마구 울면서 한걸음한걸음 떼는 나를 보는 쌩쌩도 힘들어 보였다.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조산사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힘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시 27분 여울이가 나왔다. 휴. 다섯달이 지나서 쓰는데도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엄마와 함께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고 세상에 나온뒤 씻고 평화롭게 잠든 여울이

 

 

 

여울이를 낳을 때 아빠와 함께 엄마 옆에 있었던 이음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음이는 아픈 엄마와 동생 여울이를 뒤로하고 아빠와 함께 집으로 갔다. 나는 훌쩍 큰 이음이와만 있다가 다시 아주 작고 여린 여울이를 품에 안았는데, 조산원에 계신 선생님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애 안는 것처럼 또 어색하네! 그랬다. 나는 20개월 큰애가 있는 엄마였지만 갓난아가를 능숙하게 돌보는데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틀정도 지나고 젖이 돌기 시작하자 여울이와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여울이는 조산원에서, 아빠와 이음이는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두번의 출산과정을 통해, 특히 두번째 출산과정을 통해 내가 정말로 느낀건, 내 몸에 대한 앎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나는 굳어있었다. 언젠부턴가 나는 체조선수들의 자유로운 신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가는 신체에 대한 욕망을 가졌었다. 살사나 탱고 등의 춤을 추는 신체에 대한 욕심도. 그런것들에 대해 쌩쌩에게 말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이제와 생각해보니 다 굳어있는 내몸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굳어있었다. 요가도 조금 했었고, 왠만한 스트레칭동작들에 대한 부담도 별로 없는 나름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굳어있었다(물론 지금도 굳어있다, 하지만 굳어있다는 것을 정말 알았으니 이젠 푸는 일만 남았지!). 머리로는 호흡을 하고 이완을 했지만 정작 아기를 낳을 때, 몸을 최대한 이완시켜야만 하는 그때 나는 고통과 두려움에 떨며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해서 더 아프고 힘들었다. 엄마가 한 번 해봤는데도 자기몸을 잘 모르니 여울이가 한 번 더 세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처음보다 더 아픈 두번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거 같다.

 

 

 

젖을 먹고 품에 안겨 잠든 여울이. 사실은 이쯤 되면 벌써 그때의 고통(!)은 다 잊혀져있다.하하

 

 

엄마없이 아빠와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는 이음이. 혼자 밥도 잘 먹는다. 그런데 나는 이음이와 아빠가 집에 갔다가  며칠만에 놀러왔던 날, 이음이를 보는 순간 울어버리고 말았다. 뭐랄까, 미안함같은 거였을까. 콧물을 찍 흘리며 서먹서먹하게 나한테 안기려고 다가오는 이음이를 붙잡고 나는 엉엉 나오는 눈물을 닦았었다. 지금도 그때의 이음이 사진을 보면 괜히 혼자 찡하다.

 

 

 

 

 

 

여울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기 시작한다(하나랑 있다가 둘이랑 같이 있으려니 정말 시간이 후딱 지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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