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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융 <녹정기1~12>

 잔잔 2021. 11. 9. 07:12

 

 

 

 

이야기가 키운 작은 보배, ‘위소보韋小寶’

 

 

 

  진융의 소설 『녹정기』는 제법 비장한 가운데 시작된다. 마치 조선의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모여 조국의 해방과 독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여유량이 이첨 선생의 그림에 시를 더하는 장면은 더욱 그렇다.

 

“산천이 다시 우리 것으로 옛날 같이 된다면 북과 장구를 치면서 이 강산을 밟고 다니리. 어디인들 미친 듯이 다녀보지 않으리

오!”(녹정기1, 27p)

 

 

 

  여유량은 절강성에 사는 학자로, 명말청초의 사상가, 철학자인 고염무, 황종희가 그를 찾아와 ‘명사의 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호주에 사는 부호 장윤성의 아들 장정용이 책읽기를 좋아하다 그만 눈이 멀었는데 그 와중에 문인들을 모아「명서집략」을 펴냈다. 그러나 이 고장의 부패한 관리인 오지영이 이 책을 얻어 보다가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운 후에도 명나라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연호를 바꾼 뒤에도 여전히 명나라 연호를 사용하는 점을 발견하고 벼슬길에 올라 재물을 모을 요량으로 이를 반역이라 고발한다. 이에 연관된 수많은 학자, 문인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죽거나 옥에 갇혔으며, 여유량에게도 해가 미칠까 고염무와 황종희가 여유량을 찾아 온 것이었다. 이들은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려는 중에 뒤따라와 엿듣던 관리들에게 붙잡히게 된다. 하지만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세운 천지회의 총타주 진근남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한편 양주에 있는 여춘원이라는 기녀원에서 소금 밀매를 하는 염효들이 천지회의 멤버를 찾아 싸움을 거는 소란이 벌어지는데, 이때 천지회와 진근남을 존경하는 대도적 모십팔이 그들을 혼내주고 도망가게 된다. 그리고 이 도망 길에 기녀 위춘방의 아들이자 소설의 주인공, 위소보가 함께하게 된다.

 

이 소년은 밤낮없이 기녀원이나 도박장, 찻집, 술집을 들락거리며 심부름을 해주고 돈푼이나 얻어서 쓰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찻집 탁자 옆에 앉아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찻집의 다박사(茶博士; 차 심부름을 하는 사람)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따라 다녔기 때문에 다박사는 소년을 쫒아내지 않았다. 소년은 그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고사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을 매우 숭배하고 있는 터였다. (녹정기1, 102p)

 

 

  위소보는 모십팔을 영웅호걸이라 여기고 그의 친구를 자처하며 그를 따라간다. 찻집에서 읽어주는 「삼국지」, 「수호전」, 「대명영렬전」등을 거의 외우다시피한 위소보는 강호의 영웅호걸들이 의리를 중시하는 것을 따라하여 다친 모십팔의 곁에서 그를 보살피기로 한 것이다. 위소보는 눈치가 빠르고 말재간이 뛰어났다. 모십팔은 이 작은 소년에게 꼬여 그를 데리고 청나라 개국공신인 오배를 무찌르겠다며 북경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북경에 도착하여 한 주점에서 시비걸기를 좋아하는 위소보에 의해 씨름하는 만주인들과 시비가 붙었고, 그곳에 있던 태감 해로공에게 붙잡혀 궁으로 끌려간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위소보는 기지를 발휘하여 모십팔의 도주를 돕고, 자신은 소태감 소계자를 죽이고 눈이 멀게 된 해로공의 곁에서 궁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로공의 시중을 들며 소계자인 척 지내던 위소보는 우연히 소년황제 강희를 만난다. 자신을 소현자라 소개한 그 소년이 황제인줄 모르고 함께 씨름을 하며 무공을 겨루고 가까워진다. 강희는 무식하지만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위소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위소보와 계략을 세워 자신을 무시하는 간신 오배를 제거한다. 이렇게 양주 기녀원의 잔심부름꾼이었던 위소보는 황제가 총애하는 태감이 된다.

  하지만 해로공 밑에서의 아슬아슬한 거짓연기가 들통 나고(사실 해로공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위소보로 하여금 시킬 일이 있어 살려두고 있었다), 강희의 아버지인 순치제와 태후의 비밀을 알게 된 위소보는 목숨이 위태로워져 궁에서의 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또 오배를 죽인 일을 계기로 천지회 형제들과 결의를 맺고 총타주 진근남의 제자가 되면서 그는 궁에서는 청의 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계공공으로, 궁 밖에서는 명을 다시 일으키려는 천지회의 청목당 위향주로 살게 된다. 그야말로 양다리를 걸치게 된 셈인데 이렇게 위험천만한 관계 안에서 위소보는 몇 차례나 죽음의 위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무공이라 말할 수도 없는 실력을 가진 어린 소년 위소보가 그럼에도 죽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그가 늘 지니고 있던 세 가지 때문이었다. 두 가지는 오배의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아주 예리한 비수와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 보의保衣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바로 임기응변에 능한 그의 민첩한 신체였다(특히 입!).

  위소보가 해로공 밑에서 궁 생활을 하며 알게 된 비밀은 이러하다. 순치제는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 그는 오대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었다. 강희를 기른 효장태후는 강희의 친어머니인 효강황후와 순치제가 사랑했던 동악비를 죽였고, 그녀들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순치제는 해로공을 시켜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후의 손에 해로공이 죽고 위소보가 대신하여 태후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명나라 말기 무장이었던 한인의 딸로, 만주인인 진짜 태후를 감금하고 청나라의 용맥龍脈과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표시한 지도의 조각들이 들어있는 「사십이장경」 여덟 권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홍교주를 중심으로 하는 신룡교의 일원으로 교주의 명을 받아 움직이고 있는 처지였다. 위소보가 이와 같은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 곳곳에서 등장하는 반청복명의 지지자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만주의 팔기군들이 제 각각 그들의 용맥과 보물을 숨겨둔 자리를 표시해둔 「사십이장경」을 손에 넣어 청나라의 용맥을 끊어버리고 명나라의 재건을 시작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지도는 결국 ‘복을 타고난’ 위소보의 손에 떨어진다.

  또 한편 명나라의 장군으로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는 당시 난을 일으켜 북경을 함락한 이자성이 아닌 만주족과 손을 잡고 청나라를 세우는데 일조한다. 이로 인해 오삼계는 평서왕으로 봉해진다. 하지만 오삼계는 다시 세력을 키워 명나라를 복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상가희, 경정충 등과 난을 도모하고 있었다. 오삼계는 또한 나찰국과 몽골, 신룡교와도 결탁하고 있었다. 강희와 위소보는 함께 이 사실을 알아내고 그 무리들을 모두 제압하거나 해산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희는 위소보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지만 용서해주는 대신 위소보에게 천지회를 없애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천지회와 강희 둘 모두와의 의리를 소중히 여긴 위소보는 강희의 명령도 천지회의 요청도 듣지 않은 채 통흘도라는 무인도에서 지내게 된다. 그 동안 인연을 맺게 된 아름다운 일곱 미녀의 부인들과 세 명의 자식들과 함께 말이다.

  통흘도에서 행복하지만 무료한 세월을 보내던 위소보는 끈질기고 현명한 강희의 부름에 답하여 결국 나찰국과 청의 국경을 정하는 니포초(네르친스크)조약을 맺게 된다.   

 

그때 갑자기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먼저 번엔 제갈량이 불로 반사곡을 태우는 방법으로 아극살성에서 대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번에 나는 다시 주유가 군영회에서 장간을 우롱하던 방법을 써보자.) (녹정기12, 21p)

 

 

  위소보는 나찰국의 대신 비요다라를 우롱하여 전쟁 없이 원하는 지역을 국경선 안에 포함시켜 청에게 유리한 조약을 하게 된다. 강희는 위소보를 녹정공에 봉했으며(녹정산은 조약을 맺으며 국경선 안으로 포함된 지역이며, 청의 용맥과 보물이 묻혀있는 산이기도 하다), 북경에 그와 가족들을 위한 훌륭한 집을 지어 하사했다.

  한편 천지회의 총타주 진근남은 대만의 국성야 정성공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 아들들 간의 일종의 왕위다툼으로 인해 둘째 아들 정극상과 일검무혈 풍석범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강희는 위소보를 녹정공에 봉하면서 그의 공로 중에 천지회의 총타주 진근남을 죽인 것이라는 항목을 적어, 위소보로 하여금 천지회와의 인연을 끊도록 했다. 이에 위소보를 오해한 천지회 형제들은 그를 죽이려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들과는 오해를 풀게 되지만, 어린 위소보와 처음 의형제를 맺고 그를 데리고 북경으로 왔던 모십팔은 사정을 알지 못하고 거리에서 위소보를 매국노라 욕하다가 잡혀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위소보는 연극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사형장에서 모십팔과 풍석범을 바꿔치기하여 사부 진근남의 원수도 갚고 모십팔과의 의리도 지키게 된다.

 

 

 

  이후 위소보는 부인, 자식들과 함께 고향 양주로 가 금의환향하려하다 고염무, 여유량 등과 또 다른 지역의 천지회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강희를 죽이고 위소보로 하여금 황제가 되도록 권하지만 위소보는 모든 것을 거절한 채 죽음으로 위장하여 자취를 감추고 자유롭게 살기로 한다. 하지만 강희는 위소보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여기고 오랜 시간동안 위소보를 찾는다. 위소보 또한 강희와의 우정을 생각하여 녹정산의 보물과 용맥을 파지 않고 묻어 두기로 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초반에 위소보는 새로운 시대의 혹은 똑똑한 버전의 아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큐처럼 정신승리에도 능하고(얻어맞거나, 끌려가거나 하는 상황에서 아큐와 똑같은 방식의 정신승리법을 구사한다) 뻔뻔하고 게을렀지만, 눈치가 빠르고 비상한 머리로 거짓말도 잘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야기꾼이 들려준 이야기를 외워 실생활에 적용하는 위소보를 보면서는 이 소년이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까지 계속되는 그의 숱한 위기모면용 거짓말들과 미녀들에게 집적거리는 것만을 일삼는 행동들은 점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위소보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도 진지하게 무공을 익히거나 성장을 위한 수련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스승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궁리만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소년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의 약삭빠른 생각들과 민첩한 신체, 번지르르한 말들, 그리고 그에 따르는 기막힌 행운들이 위소보를 온통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마치 등장인물들 가운데 학자인 여유량이나 고염무 혹은 위소보의 사부들인 진근남이나 구난의 위치에 서서 위소보를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는 약간은 고지식한 지식인 혹은 기득권자-였던 이들, 명나라 때는 학자나 관리, 장군, 공주 등의 기득권자들이었지만 청나라가 세워진 뒤에는 역적이 된 이들-의 눈으로 위소보를 관찰하고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소년은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자기 자신만은 속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길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진 셈인데 목숨을 보전하였을 뿐 아니라 나찰 공주를 도와 큰 공을 세웠으니 이 모두 내가 평소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연극을 많이 본 덕택이 아닐 수 없구나.) (녹정기9, 57p)

 

 

  위소보는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야기들 속의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그 이야기들 속의 가치를 자신의 인생의 신념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황상의 앞이라고 해도, 심지어 목이 잘려 나갈지라도 위소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했다.

“황상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소인의 성격이 다소 익살스럽긴 하지만 황상께 대하는 태도는 진정한 충성심이고 친구에게 대하는 태도는 의리입니다. 만약 충의를 한꺼번에 이룰 수 없을 때 소인은 하는 수 없이 몸을 움츠린 채 통흘도에서 낚시를 할 것입니다.” (녹정기11, 222p)

 

 

  위소보는 자신의 신념에 입각해서 스승, 임금, 친구를 삼은 이들에게는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 물론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위소보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나는 다시 위소보가 똑똑한 버전의 아큐가 아니라 인간 버전의 손오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위소보는 꾸준히 손오공에 비유되고 있었다(손오공, 제천대성, 미후왕, 지존보). 신통력을 지닌 원숭이가 천계를 들쑤셔놓은 것처럼, 그리고 결국 삼장법사와 함께 불경을 찾고 마침내 부처가 되었던 것처럼, 위소보라는 원숭이는 명과 청나라 사이를, 그 무형의 공간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나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작가 진융의 마각이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했다. 진융은 주석을 달아 위소보를 실제 역사 속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을 한다. 니포초조약에 서명할 때 위소보가 小자를 이상하게 적었기에 후에 색액도와 나찰국 대신 비요다라의 서명만을 알아 볼 수 있었다는 둥, 위소보가 머물렀던 통흘도(후에 장군 시랑이 조어도라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 혹은 조어도가 실제 있었던 섬 조어대도라면 여기서 위소보의 유적을 찾는다면 이러저러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둥 말이다. 작가가 이러한 주석을 단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의 결말이나 주제를 찾아가다 보면 알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위소보는 어머니 위춘방에게 대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다. 이에 위춘방은 자신은 그 당시 예뻤고, 매일 같인 한인이나 만주의 관리, 몽고의 무관 등 여러 손님이 찾아와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한인, 만주인, 몽고인, 거기에다가 회족 사람까지 있었군요? 그럼 서장 사람은 없었나요?”

위춘방은 크게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어째서 없었겠느냐? 그 서장의 라마는 침대 위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불경을 외웠지. 불경을 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눈동자를 슬금슬금 굴려서 나를 쳐다보았단다. 너의 눈동자가 흘금거리는 것을 볼 때면 그 라마를 보는 것 같다니까!” -끝 (녹정기12, 182p)

 

 

  이렇게 위소보의 아버지는 미궁에 부쳐지며 동시에 그가 한인이든, 만주인이든, 몽고인이든, 회족이든, 서장인이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중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찰국과 니포초조약을 맺을 때 색액도가 비요다라를 궁지에 몰며 한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원나라의 태조 징기스칸은 몽고인이지만, 몽고인 역시 중국 사람이므로 징기스칸이 나찰국과 싸워 이겨 서쪽을 정벌한 적 있었으므로 그 지역 역시 원래는 중국의 땅이었다는 논리였다. 작가 진융이 ‘무법천지로 날뛰는’ 위소보를 내세워 새로이 구축한 질서는 바로 한인이든, 만주인이든, 몽고인이든 결국 모두는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진융은 그러한 새로운 질서의 상징, ‘중국 사람’의 상징인 위소보를 실제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익살스런 주석을 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의 입장에서 진융이 소설에 담은 큰 주제는 사실 별로 매력이 없었다. 재기발랄하며 위트 넘치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국가주의가 느껴지며, 타이완과의 관계에 관한 현대 중국의 슬로건인 ‘하나의 중국’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위소보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매력은 충분히 느꼈지만,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을 중국 사람으로 뭉뚱그려 중국을 치켜세우는 장면들이 왠지 모르게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소설의 의미나 주제에 대해 탐구해야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가진 질문들도 대부분, 위소보는 어째서 공격하는 무공이 아닌 도망가는 무공만 뛰어난 존재로 그려졌을까(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딸인 구난을 사부로 모시며 그녀에게서 신행백변이라는 무공을 전수받는데 이것만큼은 열심히 익혀 누구보다도 빠르게 도망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그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라거나, 일곱 부인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위소보와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신룡교라는 종교조직이 이 소설 안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그런 것들-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등장인물들에 동화된다기보다 이야기 밖 관찰자의 시선으로 던져지는 질문들- 이었다.

하지만 숙제를 하기 위해 읽은 『녹정기』 또한 충분히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위소보의 행동들에 긴장하거나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특히 자신의 나체석상을 소비아 공주에게 보내 공주가 그것을 받고, 훗날 그 석상이 나찰국에서 어떤 지위를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선 빵 터졌다), 우스운 말장난을 일삼다가도 순간 뱉어내는 말속에 깊은 울림을 싣기도 하여 오대산의 선승들까지 감복시키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 위소보의 말재간에 탄복하기도 했으며, 나라는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게 된 명나라 마지막 황제의 딸 구난이 나라를 빼앗은 만주인들보다 앞장서 나라를 팔아먹은 한인 매국노들이 더 나쁘다며 비분강개할 때는 덩달아 숙연해지기도 했다.

  또 소설을 읽으며, 찻집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꾼, 설화인說話人들은 중국 역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침내『녹정기』를 다 읽고 나서 위소보에 관해서는 서정주의 시구를 빌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위소보를 키운 건 팔 할이 이야기다” 사건의 발단이 되거나 사건이 해결되는 거의 모든 지점에서의 위소보의 행동들은 어렸을 때 찻집에서 듣던 이야기들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진융은 작품 안에서 그러한 이야기꾼들의 공로를 더욱 확장시켜 인정한다.

 

소설가의 말이 후세에 이르러 사실처럼 되고, 그 얘기가 중국 수백 년 동안 영향을 미쳤으니 세상일은 소설보다 더욱 이상하다고 하겠다.

만주인들이 북경에 입경한 이후 강토를 개척하여 중국의 국토는 명나라 때보다 세배나 되었고 멀리 한나라와 당나라가 크게 성하게 되었을 때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그런 여음餘蔭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야기꾼의 공로가 없다고만 할 수는 없으리라. (녹정기9, 58p)

 

 

  진융 자기 자신 또한 그러한 소설가,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가지 방면에서 그 꿈을 이룬 듯 보인다. 한 개인의 독자입장에서도 소설 속 강희제의 캐릭터가 얼마만큼 실제에 가까운지, 어떤 부분을 새롭게 붙여 만들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사를 간략히 보며 강희제의 업적에 대해 배웠을 때보다 이야기 속에서 만난 강희제의 모습이 훨씬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실제로 강희제는 소설 속에 그려졌던 모습과 유사했던 것 같다. 이민족 황제로서의 고충이나 학습이나 국정에 임하거나 신하를 대하는 자세 등등이 실제 그가 남긴 글들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조너선 D. 스펜스의 『강희제』참고). 그래서 앞으로 강희제를 떠올리게 된다면 녹정기 속에서 본 그 모습과 느낌- 똘똘하고 다부진 소년 황제에서 지혜롭고 성실한 황제로 성장한 성왕의 모습과 느낌- 이 떠오를 것 같다.

 

 

 

  나 또한 위소보처럼 세상과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 청자로서 또 가슴 깊은 곳에서 그러한 이야기꾼이 되고 싶기도 한 한 사람으로서 오랜 시간동안 인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영향을 주고받아 온 이야기의 공로에 대해 진정으로 존경을 표한다. 덧붙여『녹정기』는 중국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나라와 밀접한 인연을 맺어오고 있음을 새삼 다시 일깨워준 이야기이기도 하다. 외국의 역사대하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어 생각보다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한국이 역사적으로 유가철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충忠이나 의義라는 유가적 가치를 다소 엉뚱하게도 위소보라는 캐릭터에 절묘하게 혹은 기묘하게 맞춤옷처럼 입혀놓은 진융의 솜씨에 감탄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