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스크랩북

24 하예성 순대국

 잔잔 2015. 8. 28. 22:28

 

 

 

 

쓸데없는 기억들, 이라고 하면 좋을까. 아니면 아직 쓸데를 찾지 못한 기억들이라고 하면 좋을까. 그런 기억들이 몇가지 있는 것 같은데, 얼마전부터 가끔 화장실에서 그 기억들 중 하나와 마주한다.

 

 

중학교 다닐 때 만났던 국어선생님 성함에 관한 기억이다. 중학교 몇학년이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아무튼 그 해 우리반 국어시간엔 늘 특별한 공책검사가 있었다. 국어샘은 조금 엄하셨고(남아있는 기억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독특하기도 했던 것 같다. 국어샘은 각자 빈 공책을 한 권씩 만들어 공책에 이름을 붙이게 하시곤 희한한 숙제들을 많이 내주셨다. 수술한것만 같았던 아주 진한 쌍커풀의 눈을 가지셨던 자그마한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목소리까지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당시 내꿈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세종대왕의 연표를 외우며 한글찬양을 한 기억도 나고, 어느해였는지 역시 가물거리나 시험전 수업 때 국어샘의 특별한 배려로 시험범위 요점을 간추려 교단에 서 애들 앞에서 발표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 어찌나 떨었던지 볼살이 덜덜 떨리는 걸 앞에 앉은 친구들이 다 봤을 정도였다. 사실 아직도 집엔 버리지 못한 국어과 교과서들이 한년별로 모여있다.

 

나는 엄청 열심히 공책을 채워나갔다. 식물을 키우듯 매일 들여다보고 가꾸고 꾸몄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한 번도 국어샘의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점수를 매겨주시진 않고 무슨 도장들을 찍어주셨던 것 같은데 내 공책에 찍히는 도장은 늘 노력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국어샘을 향한 나의 눈초리는 비뚤어져만 갔다. 괜히 밉다, 그런거.

그 뒤로 학교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이 있는 큰 도로가 있는 길가로 나오면 보이는 한 순대국집 앞에서 괜히 마음눈을 흘기곤했었다. 그 순대국집 이름이 한글자의 배치만 다르고 국어샘 성함과 같은 글자를 쓰는 순대국집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예성 순대국>이라고.

 

 

그런데 우리집에 설때 집에서 챙겨온 몇 장의 수건들 중에 "축 확장개업 2007/ 하예성 순대국"이라는 문구가 적힌 수건이 화장실 변기 앞 수건걸이에 턱하니 걸려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수건이 걸려있는 날엔 변기에 앉아 국어샘에 대한 기억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몇번이나 하다가, 문득 그 순대국집이 아직도 있다면, 그리고 국어샘이 아직도 학교에 계시다면, 한 번 찾아뵙고 같이 순대국을 먹으며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하예성순대국 검색해서 그 식당에 나오는 메뉴사진으로 골랐다. 맛나겠다순대국밥)

 

어렵겠지.

그래서 여기에라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