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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

언젠가 한 번 보고 싶었던 영화와 책이었다. 넷플릭스 한달 무료체험하던 중에 파수꾼을 먼저 봤고,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뭔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 영화에 대한 막막함이 사라질까, 그런 생각. 내 막함이 어느 정도였냐하면, 영화를 다 보고 바로 리뷰를 검색하다가 맘에 닿는 게 없어서, 또 다시 바로 일어나 도서관으로 가 책을 빌려오게 하는 정도의 막막함이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막막함이었다.

 

 

 

파수꾼은 뭔가를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영화의 제목이 파수꾼인 건 아마 (포스터 속) 세 친구의 관계를 지키고 싶어했던 기태를 가리키는 것 같다.  책 제목에서의 파수꾼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꿈을 가리킨다. 호밀밭의 파수꾼.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줄까?"

다른 곳을 보며 실없이 물었다.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난 말야......"

"뭐가 되고 싶은데?"

"너 그 노래 알지? '호밀밭을 걸어가는 누군가를 잡는다면' 하는 노래 말야."

"틀렸어. '호밀밭을 걸어가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야."

피비가 정정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즈가 쓴 시 말야."

"알아."

그러나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잡는다면'이 아니라 '만난다면'이겠구나. 아무튼 난 그 노랠 들으면 넓은 호밀밭 같은데서 어린 아이들이 노는 것이 떠올라. 어린 아이들만 잔뜩 있고 어른은 아무도 없는 거지. 그러니까 어린 아이들과 나만 있는 그런 풍경. 그런데 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어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야. 어린 아이들은 놀다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잖아. 그럴 때 내가 있다가 얼른 붙잡아 주는 거지. 하루종일 그 일만 하면 돼. 그러니까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인 셈이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그런거야. 물론 바보같은 생각인 줄은 알아."

나는 꿈을 꾸듯 말했다.

피비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아빤 오빨 죽일거야."

하고 되뇌는 것이다.

"죽여도 좋아."

273-274

 

 

 

두 파수꾼은 모두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점에서 비슷하다. 물론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조마조마함을 느낀 건 이미 내가 어른이나 꼰대가 되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기태는 자살하고 홀든은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살아간다. 기태와 친구들의 관계는 작은 일로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폭력과 폭언을 휘두르며 점차 멀어진다. 기태는 나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친구들의 인정과 관계가 중요했던 기태는 결국 무너진다. 학교에서 쫓겨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홀든의 말을 쭉 듣다보면 홀든 역시 갑자기 사라지거나 죽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근데 왜 기태는 죽고 홀든은 죽지 않았을까.

 

책을 읽고 그런 질문이 생겼다. 그러자 내가 막막했던 이유는 기태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태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가 나는 너무 막막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향하던 기태를 붙잡아줄 호밀밭의 파수꾼이 필요했을까. 잘 모르겠다. 나도 점점 더 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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