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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학생사이 <아이들과 상호작용: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교육>

쌩쌩 2021. 12. 10. 09:28

 

 

 

 

교사와 학생 사이
교사와 학생 사이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을 하는 것이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이다.

 

- 크리슈나무르티-

 

정말 최고의 기술은 말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어떻게 하면 적절히 쉬운 말들을 통해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많았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그럴 땐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 것이었을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되뇌면서 제 안의 권위를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차츰차츰 권위적인 말들이나 비교의 말들을 하지 않게 되어갔지만 순간 불쑥불쑥 조급 해지는 저의 마음들을 보면서 집에 가는 길에는 언제나 반성하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버리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단지 옳지 않다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면서 말하기 보다는 나의 의견을 말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시간을 앞으로 가져 볼 것입니다. 분명히 엄한 소리를 할 필요가 있을 테지만 그 순간이더라도 그 엄한 이야기들이 너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보다는 진실을 기반으로 충분히 이해를 시키면서 나는 이러해서 화를 내는 거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실을 기반으로 배제하지 않음, 관계, 말투(형식)가 여러 지식들(내용)에 앞섭니다. 그냥 형식이 있고 그 틀에 내용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내용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분노하되 모욕을 주지 않는다. 상대방을 대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통해 말한다. '교사와 학생 사이'라는 책을 통해 비폭력대화에 대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말들을 하기 보다는 어른들의 관념적인 언어들이나 추상적인 말들을 많이 사용하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말들이 말꼬리가 되어서 서로 소통한다기보다는 서로 이기지 못해 안달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입장에서 적절치 못한 아이들의 행동을 보게 될 경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이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일반적인 대응방식을 많이 보게 되면서부터는 이 두 가지(어른들의 추상적인 언어, 아이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말하는 방식들)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습니다.

 

 

교사와 학생사이, 진심만으로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나의 의사소통 방식을 점검했습니다. 정말 성숙의 끝은 우리의 말하는 방식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공허한 자신감을 안겨 주기, 판결하는 칭찬들, 도덕적 당위적 발언들.. 충분히 나의 삶이 된 말하기 방식도 있지만 조금만 뉘앙스가 달라지면, 아니면 조금이라도 몇 개의 단어가 달라진다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정말 선생님은 진심을 기반으로 최고의 기술을 익히고 연습해야 합니다.

 

 

 

 

 

지금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여기에 있고 아이들이 저기에 있고 그리고 서로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면 충분히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아마도 ‘아이들을 믿는다’란 전제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을 믿지 않는다면 참다운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실천할 때 아이들을 믿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거짓이 된다. -이오덕-

 

여기에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자유란 무엇인지, 폭력이란 무엇인지, 관념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교사 자신 안에 있는 권위의 부스러기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으로써의 선생님이라는 권위가 완전히 사라져서 단지 삶에 대한 권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하나의 존재로서 대등하게 함께 배워나가는 것일 텐데.. 그러한 시간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아이들이 어떤 제도 속에 있더라도 그 제도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지녔으면 합니다.

 

 

협력에의 강요.. 이것도 참 조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부딪쳐 나가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은 이상 이것마저도 단지 억압이 될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넌 다른 교육을 받은 아이니까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던가 너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라는 일반론적인 발언들이 또 다른 억압이 되어서 아이들을 옥죌지 모릅니다.

 

 

나도 억지 부리기좀 해 볼까 그냥 맘 한번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냥 한번 억지 부리 기라는 맘을 먹어봤을 뿐인데 그 맘 한번 먹은 것이 분위기를 다르게 변화시켰습니다. 내 맘 속에 불편함이 밀려들면서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역시 이건 아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정말 그저 내가 변화할 수 있을 뿐이고 그 변화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한다.'  '가르침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자기부정'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조급해하는 마음, 단순한 사실을 가지고 관념적으로 해석하는 마음, 끊임없이 배제시키려는 이분법적인 마음들이 아이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아이들과 지낼 때면 불쑥불쑥 저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조급한 마음, 함부로 판단하는 마음, 배제시켜 공감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바라봅니다. 더욱 앞으로 아이들과 친구로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근본적으로 선생님이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무엇이 진리인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학생들 내면에 자유를, 혁명을 가져오게 하는 사람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