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공책

<맨스플레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레베카 솔닛의 발견

 잔잔 2015. 8. 9. 21:13

성평등강사단 교육을 받고 온 쌩쌩이 도서관에서 페미니즘관련 책들을 많이 빌려온다. 그중에 얇은 책 하나를 골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가 여기저기 쓴 아홉개의 글이 묶여 있는 책이었는데, 그 중에 첫번째 글이 책 전체의 제목이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는 제목의 글. 이 글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밑거름이 되었다고. 맨스플레인은 맨MAN과 익스플레인EXPLAIN의 합성언데, 설명하는 남자, 설명남 그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면, 맨스플레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꼰대, 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났다. 꼰대라는 말은 내게, 어원을 잘 모르는 이상한 느낌의 단어라 거의 쓴적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꼰대, 라는 말의 이미지도 역시 맨이다. 주로 올드맨 . 어쨌든 이 책은 저자의 이 첫번째 글로 유명해진듯 하다. 그러나 나머지 글들도 좋다. 나는 <거미할머니>와 <울프의 어둠> 이 좋았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랫만에 다른 저작들도 다 읽어보고 싶은 저자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휩싸였다!

 

 

 

 

하지만 레베카 솔닛에 대해 더 알아보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심지어 저자의 이름인 Rebecca solnit이 레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 리베카 소울닛 등으로 표기가 통일되지 않은 문제까지(다음에 이 책의 저자가 레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 외라고 표시됨..). 국내에는 <걷기의 역사>, <어둠속의 희망>, <이 페허를 응시하라> 그리고 최근에 나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까지 네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다. 레베카 솔닛은 작가, 역사가, 반핵, 반전, 여성운동 등의 활동가로 지금까지 지리, 사회, 예술, 정치, 폐미니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열 일곱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영문학을 전공하며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 저널리즘대학원에 가셨다고 한다(구글 Rebecca Solnit 검색). 나는 그녀의 생각과 글쓰기 방식이 맘에 들었다. 

 

 

"그녀는 에세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런 글쓰기가 자신에게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도 한 때는 분석적인 미술비평, 저널리즘 기사, 사적 에세이를 따로따로 썼지만, 1980년대 네바다 핵시험장에서의 반핵운동 경험을 기록하면서 그토록 다층적인 사건들과 행위자들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로를 다 거닐어보는 글, 뜻밖의 연결을 환영하는 글, 끝나지 않는 대화를 시작하는 글,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는 글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한다.(235p, 옮긴이의 말)"

 

 

여러 원주민 부족의 창조설화에 등장하는 거미할머니이야기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속 미래에 대한 한 문장이 이어지고, 강간과 살해에 관한 수많은 매체의 보도와 카산드라의 신화가 이어지며(더 많은 것들이 이어진다), 그녀만의 삶의 주제가 아홉편의 글들을 꿰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1. 또 다른 내러티브를 찾아서

 

무려 40세대를 망라하는 신약 마태복음의 가계도는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 이어진다(다만 요셉이 아니라 하느님이 예수의 아버지로 추정된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이새의 나무(Tree of Jesse)-마태복음에 나온 예수의 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일종의 토템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한 중세의 여러 예술작품에서 묘사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작성하는 가계도의 선조라고 일컬어진다. 이처럼 -가부장제의, 가계의, 내러티브의-일관성은 삭제와 배제를 통해 확보된다. 103-104, 거미할머니

 

전에 천명관의 소설을 읽으면서 에피소드보다는 내러티브를 끔찍히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관해 쓴 적이 있다. 어떤 역사성을 띤 서사에 나는 꿈뻑 죽는데, 이를테면 신화나 전설이 그렇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내러티브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움찔했다. 나는 내러티브를 하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의 각기 다른 저마다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를 흠모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주류 내러티브의 바깥에 있는, 그럼으로써 사라져 버린 '할머니'들을 호명한다. 나는 내러티브의 세계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까지, 모든 걸 포함하는 세계라고 착각하고 있었나보다.

내러티브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을 보지못하게 하는 콩깍지를 여기서 벗어던지기로 했다. 그런데 선형적인 내러티브 말고 비선형적인 거미줄같은 내러티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물같은 거미줄은 비선형성의 이미지, 무언가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방향들을,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는 여러 근원들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한줄로 이어진 후손들만이 아니라 할머니들까지 포함하는 이미지다. 117, 거미할머니

 

거미줄같은 내러티브의 예들을 찾아보리라! 나의 내러티브 사랑은 역시 쉽게 접히지 않는다.

 

 

 

2 '어둠'의 공간을 만들자

 

우리시대의 논픽션은 픽션도 그다지 기꺼워하지 않을 방식으로 점점 더 픽션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한가지 이유는 과거도 여러 측면에서 미래와 마찬가지로 어두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들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24, 울프의 어둠

 

버지니아 울프에 관해서 아는 것은 소설가라는 것과 레베카 솔닛이 이 책을 통해 말해준 것이 전부다. 그녀가 좋아하니 다음번에 울프의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다. 1915년 1월 18일 일기에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121p)" 미래는 어둡다ㅡ는 어쩌면 비관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인 멘트를 레베카 솔닛은 다르게 해석했다. 낙관이나 절망은 미래를 단정짓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어둠인 미래는 다르다고 말이다. "빈틈을 메운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알지는 못하는 어떤 진실을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는 어떤 거짓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 안다고 착각할 때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보다 사실 더 모른다.(125p)" 세계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고 알수없는 것이다. 어떤 것을 분명하고 뚜렷한 것으로 포획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다. 오지 않은 것을 사라지게 하지 않으려면 잡히지 않으며 불분명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어둠'의 상태를 두려워한다. 나역시 살면서 어떤 때에는 누군가 작은 표시라도, 이번엔 이쪽이라고, 해주었으면 간절히 바랄때가 있었다.

 

울프는 길 잃기기를 찬양한다. 말 그대로 길을 못 찾는다는 의미에서의 길 잃기가 아니라 미지에 대해 열려 있다는 의미에서의 길 잃기이다. 또한 그녀는 물리적 공간이 정신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찬양한다. 139, 울프의 어둠

 

만약 또 그런 때가 찾아온다면 나 또한 울프의 어둠에 관해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그러한 '어둠'의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겠다(이것은 올해 새롭게 맘먹은 나의 꿈에 관한 다짐). 그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신의 '육체적인 진실'을 존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진실이 육체적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그녀가 그 말을 꺼내기 전에는 우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 그자체로 급진적이다(146p)." 육체적인 진실이란 무엇일까. 온몸의 감각이 알아차리는 진실이라는 것.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느껴진다. 훗날 '어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장기기억저장소에 보관하기로 한다! 

 

 

 

3 언어는 힘이다(189p)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외쳤던 멕시코의 사파띠스따의 이야기는 나의 중심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중요한 구슬이다(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본 뒤로 자꾸 이런 표현이 쓰고싶다). 레베카 솔닛 역시 그런가 보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바꾸는 이유는 말에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혹은 자신은 자신의 말을 가져야 하며 소중히 해야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문득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에 나오는 밤색말 이야기가 떠오른다. 밤색말은 자신이 죽어야하는 이야기 속에서 도망쳐 다른 이야기로 간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갑자기 그 밤색말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전력질주한다. 탄-탄  (오! 어쩌면 밤색말 이야기가 비선형적인 내러티브의 한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호명할 수 없거나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아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불가능할 때도 있다. 따라서 호명과 묘사는 현 상태의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항하는 어떤 반란에서도 긴요한 작업이다. 148, 울프의 어둠

 

아직 번역되지 않은 레베카 솔닛의 <안팎뒤집기inside out>라는 책도 보고 싶다. 그녀가 호명할 수 없거나 묘사할 수 없는 것들을 호명하고 묘사한 다른 책들을 읽고 나도 따라해야겠다. 그녀는 나의 새로운 롤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