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 방/의자

나의 첫번째 스승, 전혜린

쌩쌩 2015. 6. 30. 23:17

 

 

 

 

 

 삶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 빨리 안정을 찾고 싶어 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 질문에 답을 빨리 내리면 내릴 수록 안정을 찾기는 커녕 더 안정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기도 한다. 일단 답을 빨리 내린다는 것은 안주하려고 하는 태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21살 때인가, 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해야 하나?

 

 그때 그 질문은 당시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답을 찾고 싶었던 건지 방안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고 방안에 있던 수 많은 자기계발서 중에서 한권의 수필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한 사람, 전혜린. 나에게 답을 주었다라고 생각한 그녀. 하나의 수필을 읽고 난 다음,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그녀의 모든것을 읽고 싶었다.

 

'사랑하면서 파멸의 길을 걷든지 사랑을 지닌채 함께 죽든지 양자택일의 문제이다.'                                               -전혜린-

 

 그 때의 '나'는 이 문장을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을 지닌채 죽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긴 듯하다. 아니면 파멸의 길을 걷든지..

 

 지금은 파멸의 길을 걷는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다고 해야 할까? 그때 당시의 '전혜린'에 대한 '편파적인 사랑'을 생각한다. 

 

 

<폼페이 화산 유적>

 

 

 

내가 최근에 가장 빠져있는 사람..
인식의 정열속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이..
가지고 있는건 에세이하고 서간집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사람을 따라가야 할것 같애..그러지 않으면...(2004. 8.26)

 

 

훌륭한 번역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어학 실력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특히 픽션의 경우—나름의 편파적인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것만 있다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내가 내 작품이 번역될 때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출처: 무라카미 하루키 저, 이영미 역, 2011,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260

 

 

 훌륭한 번역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편파적인 사랑, 다른 말로 하면 스승에 대한 편파적인 사랑?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저 사람이 정말 멋지다는 것은 나만이 알고 있어" "분명히 먼가가 있어, 먼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급히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어" 라는 걸까?

 

 정말 나는 그녀가 따라간 모든 길을 알고 싶었고 그녀가 읽었던, 번역했던 모든 것들을 읽고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어느 순간 그녀가 나에게 주었던 답들을 떠나 또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지만 처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편파적인 사랑의 순간을.

 

그리고 여전히 편파적인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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