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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쌩쌩 2014. 6. 17. 16:17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 인간적 만남>

 

진정한 교육은 경영기술이 아니라 ‘인간적 만남’이라는 사실을. -론 밀러-

 

이 책에서 크리스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지내 왔으며 어떠한 지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상세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글머리에 조셉 칠턴 피어스의 표현처럼 ‘살아가는데 진실로 문제가 되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낸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해나가면서 이루어가기(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상황), 가치의 제도화, 자율, 다양성, 내적 자발성, 공격성, 폭력없는 탄생, 공동체, 진실을 말하기, 자아(무마사토 동인), 억압, 최소한의 개입, 아이에 대한 인정, 일, 배움에 대한 욕구, 불안, 역설, 창조 등등.

 

우선 알바니 프리 스쿨의 역사를 통해 학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메리가 과거에 받은 이런저런 영향들(크로포트킨의 사상, 서머힐, 라이히의 사상)과 그 때의 상황(아들 마크 루의 학교 거부와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는 세 아이)들로 인해 한 학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해가 거듭 될수록 학교를 유지하는 과정 속에서 확고한 재정 기반 위에 학교를 세워야겠는 방침을 메리는 정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자체 사업을 개발하려 했다. 책과 크게 상관없는 부분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역사를 보면서 현 재미난 방과후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비영리 협동조합으로서의 재미난 방과후는 조합원의 지속적인 가입으로 인해 운영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로 인해 함부로 규모를 키우는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아이들의 수에 대한 고민도 끼워 들어가겠지만 일단 규모를 키우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긴다면 단순히 매력적인 방과후를 만들어 내는 것을 떠나서 확고한 재정적인 기반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의 일이 될 지 모르지만 조금씩 이 부분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

 

 

 

학교 운영의 방법론을 정착시키는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에 봉착한 메리와 교사들은 확고한 내적 자발성이라는 방침을 세우고 길을 내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자기 책임 아래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학교가 되길 바라며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행로를 스스로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침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행복과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성취감을 통해 사회의 편견에 찬 평가기준에 따른 미래의 보상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들을 만들어 나간다고 믿었다.

 

여기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공격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더욱 확고히 내적 자발성이라는 지점에 대한 논의가 풍성해 진다. 무마사토란 아이를 통해서 이 부분은 더 적절히 표현되어 진다. 우선 라이히의 견해에 따르면 억압된 정서의 에너지는 신체의 근육조직에 쌓이는데 그것은 서서히 근육 조직을 굳게 해서 감정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 결과 내면에서부터 공허하고 고립되었단 느낌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적 공격성’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러한 억압된 정서는 온갖 숨겨진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분노와 적의가 만들어지면서 어떤 친밀한 관계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크리스는 일반적인 학교의 공격성에 대한 접근 방식(상벌제도-억압방식)은 모든 감정을 쏟아 내버리면서 공격적 행동을 가속화 하든지 아니면 분노와 함께 지하로 숨어들어 인간 시한 폭탄이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갈등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거나 제거할 것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 관계로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스는 무마사토를 통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모두 각자의 내부에는 제멋대로인 야성의 어린아이(내면의 힘)가 있는데 많은 체계 속에서 이것을 자아(내면의 힘)라고 불린다. 이 내면의 힘을 ‘무마사토 동인’이라고 칭하며 그것보다 더 큰 힘이 자기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자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폭력에 물들여 갈 뿐인지 모른다. 원래 삶은 폭력적이어서 자신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더 큰 힘으로 자기를 바라볼 때 그 폭력에 물들여 가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크리스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도록 성적이나 보상따위를 이용해서 서로 경쟁하도록 몰아부치지 말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인정하고 창조적인 배출구를 열어 두도록 종용한다. 그리고 또한 공격성과 관련된 아이들의 행동에 최소한의 개입이란 입장에서 정서적으로 깨어있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제시에 대한 공동체의 대응방식은 탁월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제시에게 언제나 진지하게 대하면서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제시는 차츰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크리스는 끊임없이 책 전체를 통해서 ‘아이들은 시련과 고난에 바탕을 둔 자신의 독특한 체험을 통해 중요한 자아인식을 얻는 기회를 가진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유의 씨앗을 품고 태어난다. 아니 아이들은 자유다. 무엇이 그들을 몰고 가는 걸까? 끊임 없는 판단들이 그렇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른들의 판단, 선생님들의 판단.. 그러한 관념들이 틀을 만들고 아이들을 가두어 놓는다.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즉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전제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이들은 그 틀 속에서 여러 이야기를 주입받는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그저 아이들은 그 끝없는 틀들에 대항한다. 반항한다. 그러다 관념들에 익숙해 진다. 그리고 그들이 관념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안주해 버린다. 그 안주해 버린 관념들을 벗어나길 이제 두려워하기 까지 한다.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 그들 속에서 참여한다. 그리고 도망치든가 폭력으로 대항하던가 하는 행동들에 그건 모두 관념에서 관념으로 이동할 뿐이라고 이야기 하자. 즐기자. 그들이 즐기는 그 시간들 속에서 함께 즐기자. 지금-여기서 즐기자. 내가 진정 자유롭지 않다면 아이들을 권위로 억압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