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 방/책

하이타니 겐지로 <모래밭 아이들>

쌩쌩 2014. 6. 17. 16:21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그것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왜 그것이 먼저냐 하면, 규칙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질서가 유지 될 수 없어. 개개인이 납득하느냐 못 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개인보다 규칙이 중요하다는 건가요?"

 

" 그런 말이 아니야. 개인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방종이나 무법은 추궁해야 한다는 말이아.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는 없어."

 

구즈하라 준은 좀이 쑤셧다. 규칙이니 개인이니 자유니 하는 말을 끌어다 붙인다면 이쪽도 할 말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지만, 묵묵히 참아냈다.

 '끼어들지 마, 아이들을 믿는거야'

 

구즈하라 준은 경을 외듯 연거푸 중얼거렸다.

 

기우치 리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뒤에 자신 없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방종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면 그렇지."

주저 없이 모리 선생님이 대답했다.

 

"어쩐지 조금 쓸쓸하네요."

기우치 리카가 말했다.

 

"쓸쓸하다니, 무슨 뜻이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니까,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어쩐지 쓸쓸해요."

그 말을 들으니, 구즈하라 준은 기우치 리카가 안쓰러웠다.

 

"규칙이란 참 쓸쓸한 거네요."

하고 말하고 그 아이는 자리에 앉았다.

 

(중략)

 

"저는 구즈하라 선생님이 말씀하신, 학생들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는 일에는 주저 합니다. 주저한다기보다 반대합니다. 학생들은 미숙하고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가와 선생은 눈을 내리깔고서 구즈하라 준을 보았다.

 

"오가와 선생, 계속 말씀해 보세요."

구즈하라 준은 오가와 선생에게 기탄 없이 말해 보라는 뜻으로 말했다.

 

"중학생들은 아직 자신을 완전히 규제할 수 없는 나이이므로, 적당한 틀을 정해 주고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그 적당한 틀이 바로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즈하라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오가와 선생은 역시 눈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구즈하라 준을 보았다.

 

"구즈하라 선생님 반 아이들은 발표력은 좋지만, 저는 무질서 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즈하라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오가와 선생은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은 좋은 듯 했다.

 

오가와 선생과 동년배인 교사가 손을 들었다.

" 시게노부 선생, 말씀하세요."

교감 선생이 말하고, 시게노부 선생이 일어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가와 선생은 좀 전에 자유를 준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자유는 모든 인간 속에 있는 것이지 누가 주거나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자유에는 이를테면 사람을 죽일 자유도 있......."

오가와 선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끝까지 들어보세요. 사람을 죽일 자유도 있지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자는 결코 살인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요."

구즈하라 준은 시게노부 선생의 얼굴을 새삼 보았다.

 

"굉장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참으로 많은 생각을 떠올게 하는 함축적인 말이에요. 사람들은 살인할 자유가 어디 있냐, 사람을 차별할 자유가 어디 있냐고들 하죠. 폭력, 비행, 등교 거부 모두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아무한테도 그럴 자유는 없다, 이렇게 단정적인 생각이 점점 확대되어 우리는 언제부턴가 학생들의 자유를 빼앗는 쪽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가와 선생의 낯빛이 조금 창백해졌다.

 

"나도 사람을 죽일지 모릅니다. 나도 남을 차별할지 몰라요. 비행이나 등교거부도 이처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 보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나 일방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혀끝으로만 학생들을 깨우쳐도 되는가 하는 문제들이 당연히 제기된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선생님이 시게노부 선생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교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교사라는 직업에는 인간을 성직자로 만들어 버리는 마약과 같은 구석이 잠재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거짓 없는 감상입니다."

 나의 고백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세요 하고 시게노부 선생은 말을 이었다.

"자유나 평화를 입에 올리면서 수십명이나 되는 학생들 앞에 섰을 때의 은밀한 우월감, 인간으로서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고 학생들을 타이를 때의 숨기기 힘든 우쭐함, 그것은 모든 인간의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