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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살로메 <선택된 자들의 소망>

쌩쌩 2014. 6. 19. 09:26

 

 죽음이라는 것이 그를 괴롭힌 적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하여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추구해 온 안식을 기다리는 듯했다. 극히 짧은 기간동안 메르헨을 통해 얻게 된 인생의 희망이 그렇듯이 허망하게 좌절되어 버린 상태에서 그는 그러한 평안을 전보다 더 많이 원했을 것이다.

 

언젠가 그는 위로하듯이 내 손을 쓰다듬으며 장난 스럽게 말했다.

 

" 내 죽음은 당연히 하나의 귀향이라고 해야 될거예요."

 

 여름 내내 나는 그의 곁에 앉아 책을 읽어 주었다. 어느 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죽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구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죽음이란 자신을 파멸시키는 강제적인 것이라고 느껴 두려워하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나 자신이 진지하게 바라고 있는 정적과 안식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역설적인 말입니다만 죽음에 의해 이미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게 된다는것, 그것을 나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젊었을 때 소박한 신앙의 길에 들어 설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졌으면서도, 사실상 한 번도 자유를 느꼈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 외견상의 자유를 오히려 하나의 참기 어려운 숙명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내게 내가 본래 원하는 것과는 모순되는 여러가지 동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강제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립 정신이 강하면 할수록 선택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 원래가 그런거야. 적어도 그 인과율로부터의 이론적인 자유 뮨제는 별도로 치고, 그 외에 무엇인가 자유 감정이라고 표현될수 있는것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분명해.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인격 바로 그것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필연성에서 생겨난 것인지 하는 문제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거야. 우리 자신이 충분히 힘에 넘쳐 있을 때엔 외부로부터 강제된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그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참다운 자유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자유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여러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상황으로서 본다면 언제나 오직 하나의 것, 자기의 성분 속에 있는 것을 뜻하는군요."

 

루돌프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유란 각 사람이 자신의 방법으로 가장 행복하게 느끼고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정신 상태가 되는 것이군요. 그것에 모순되는 것은 모두 강제적인 것으로 느껴지구요. 그와 반대로 이러한 정신 상태를 가져 오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곤란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자유로 받아들여지지요. 왜냐하면 이런 의미에서의 개인적 욕구가 달성됨으로써만 정신의 완전한 평화, 말하자면 그 개인에 있어서의 천국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루돌프는 계속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자유를 무척이나 즐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없을지라도 저 크나큰 열반의 세계에선 나를 축복해 주는 자유의 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런 자유의 감정은 인간 개성이 얼마나 강하고 힘이 있고 깊이가 있는가에 따라 증감된다는 것이야. 때문에 나는 아직 자아가 통일되지 못했고 오직 제어하기 어려운 풍동만이 있던 청년시절엔 이 자유의 정신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무렵에는 충동적이 되어 그저 내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참다운 자아 감정이나 정신의 자유나 평안은 없었어. 내 정신의 참다운 해방은 그 속에서 내가 완전한 것으로 느껴져 그것에 헌신 할 수 있는 하나의 의도적인 이상을 발견해 내었을 때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가 죽는다는 생각을 털어 버리려 애쓰면서 말했다.

 

루돌프는 나를 바라보면서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형은 강한 사람입니다. 형은 긍정적으로 도달한 그곳에 나는 부정적으로 체념하고 온갖 생명력을 소모한 뒤에야 도달하는 것입니다. 형이 의지를 갖고 노력하여 수행하는 일을, 나는 이 세상 피곤한 것들에 남겨져 있는 크나큰 무에의 귀환이라는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의 경우에서도 지고의 자유로운 감정은 자기 자신이 의지한 속박 속에 있기 마련이지요. 진정한 자유는 모든 가능한 것들 중에서 참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그것에 따르는 자기 긍정 속에 있으니까요."

 

"물론이지." 하고 나는 말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유는 아니다. 자유는 우리 인생의 최고 순간에 우리에게 구원으로 열려지는 것으로서, 그때의 우리 속마음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기에 내가 있다는것, 그리고 여기서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것-그런 상태인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참다운 자유란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고 있는것을 따른다는 것이지. 인간이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그런 의미로서의 운명에의 귀환이라는 뜻이 강해지는 것이다."

 

- 루 살로메의 <선택된 자들의 소망>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