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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영화 〈로얄테넌바움〉을 보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한번봐서는 어려워 영화를 다시 보고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는데 일상에 치여 결국에는 짧은 메모와 함께 저어기 한구석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주말에 쌩쌩이 요즘 인기많다는 디즈니만화영화를 보여줬다. 이음이랑 놀면서 보느라 멈췄다가 다시 보기를 여러번. 그래도 끝까지 봤다. 디즈니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에 영화에 선입견이 먼저 생겼을까. 보면서도 흥, 보고나서도 흥, 이었다. 이제 늙었나보다, 이걸 왜 보자고 한거야, 재미도없고 감동도 없네하면서 아무렇게나 지껄여지는대로 평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라디오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화ost들이 줄기차게 나오는 거다. 그전에도 나왔지만 그때는 그게 겨울왕국 ost인지 알지 못했다(나는 거의 하루종일 라디오를 켜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매일 음악과 함께 영화장면들이 떠올랐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안나가 엘사한테 계속 눈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냐고 문을 두드리는 장면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었다.
실로 음악의 힘은 대단했다. 결국 나로 하여금 <겨울왕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할까? 나는 감히 이 영화를 하찮게 여겨도 되는 걸까? 왜 하필 모든 걸 얼려버리는 힘을 갖게 됐을까? Frozen을 겨울왕국이라 번역한 이유는 뭘까? 엘사와 안나의 부모는 엘사를 꼭 가둬야만 했을까? 여름을 꿈꾸는 눈사람이라 올라프는 꽤 멋진 캐릭터같아, 흠.......따위의 생각들을 음악을 들을때마다, 장면이 떠오를때마다 마구 했다가 접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제는 새벽에 자다 일어나 <겨울왕국>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나한테 해줄 얘기가 있나보다!
엘사네 집은 엄마와 아빠, 엘사와 여동생 안나 이렇게 네식구가 살고 있다. 엘사의 아빠와 엄마가 작은 왕국의 왕과 왕비라는 점, 그래서 두 딸은 왕국의 공주라는 점은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이음네도 아빠왕, 엄마왕비와 두 왕자로 비유할 수 있겠네, 이런식으로 넘겼다. 물론 그런식의 비유는 사절이다. 만약 왕국이 아니라 평범하고 작은 집에 사는 네식구 이야기였다면 흥행이 안됐으려나. 아무튼 네 식구를 분석해보며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하자.
1 엘사
엘사의 손은 모든 걸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걸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가진 미다스도 결국 불행해졌다는데, 얼음이라니 흠. 하지만 걱정과 달리 엘사는 자신의 힘을 가지고 동생 안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는 삼단눈사람 올라프를 만들어 부모가 잠든 사이 신나게 논다. 그런데 이 삼단눈사람 올라프는 모순을 안고 있다. 눈사람이면서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다니...! 그럼 녹아버리잖아. 뒤로 갈수록 더 가관이다. 심지어 여름을 꿈꾼다. 햇볕, 초록빛 풀, 아 이런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눈사람은 여름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뭔가 슬프면서도 웃기면서도 마음에 밟힌다. 그런데 이 올라프가 바로 엘사다. 엘사는 모든 걸 얼음으로 만드는, 어쪄면 차갑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지만 사실은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는, 한밤중 여동생의 놀자는 떼를 단칼에 거절할 줄 모르는 맘착한 소녀일뿐이다.
그런데 이 소녀는 결국 그 신비한 힘때문에 벼랑끝에 몰리고 만다. 그리고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는 삼단눈사람 올라프대신 사람들을 겁주는 거대한 눈괴물(이름이 없어 이렇게 부른다. 안나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을때 안나를 내쫓았던 거대한 눈괴물)을 만들어 곁에 두고 자신을 얼음성에 가두고 만다. 스스로는 그것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자유라 위로하며 말이다. 아 귓가에 let it go가 울려퍼진다. 그러는 동안 올라프는 여기저기를 방황하다 동생 안나를 만나 함께 다닌다. 그러니까 엘사는 자신을 두개로 나눈 것이다. 눈괴물을 만들었을때도 올라프는 없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올라프는 안나와 함께 언니 엘사를 구한다. 모든 게 꽁꽁 언 왕국이 녹아 따뜻해졌을 때 점점 녹아 사라지고 있는 올라프의 머리 위에 눈구름을 만들어 준 엘사를 보며 역시 올라프가 엘사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로써 올라프는 여름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눈사람이 되었다. 영생을 얻은 올라프는 꿈꾸던 여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엘사 역시 마찬가지.
2 엘사와 안나의 부모
엘사의 부모는 엘사가 가진 평범하지 않은 그 능력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크고작은 사건들이 발생하자 더더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결국은 엘사를, 엘사가 가진 그 힘을 봉인하기에 이른다. 엘사를 방에 가둬 두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어딘가에서 깊은 한숨이 쉬어지는 걸 느꼈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그랬을까. 아직 참 모자르고 서툰 부모지만 어쨌든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감히 정의를 해보건데, 부모란 결국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긴 존재가 아닐까 한다. 전에 어느 분이 새끼를 낳고 울타리를 쳐봐야 세상이치를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되기전의 나였다면, 나는 엘사의 부모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때문에 엘사가 자기자신을 두려워만하다가 외톨이로 청소년기를 보내고야 말았다, 동생 안나까지도 외롭게 만든 나쁜 부모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뭐랄까, 슬프다. 그래, 뭔가 슬프다. 엘사의 부모가 왜 그랬는지 그 심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사 부모의 행동에 공감하거나 동의 할 순 없다. 학생을 억압하는 교사나 학교, 사회를 원망만 했던 시기를 지나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상황을 동의할 순 없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 엘사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음. 이건 쌩썡이랑 한번 얘기해볼 주제다. 일단 여기선 패스. 영화속에서 엘사의 봉인을 푸는 흐름은 참으로 극적이다. 부모가 갑자기 사라진다. 배타고 어딘가에 갔다가(해상에 있는 왕국이었던가 그랬던것 같다. 영화를 본지 오래되어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죽는다. 이럴수가. 나는 이장면에서 '헉'하고 놀랐다. 언젠가 어떤 교육수업에서 들었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세가지 역할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1 아낌없이 사랑한다
2 지켜본다
3 미련없이 놓아준다!
엘사의 부모는 세번째 역할을 아주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부모가 사라지자 아이들의 이야기는 점점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역시 부모는 때가되면 아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명제를 맘깊이 새겨두었다. 아무튼 이로써, 물론 슬프고 갑작스럽지만, 엘사의 부모는 마지막 역할을 하고 무대에서 사라진다.
3 안나
엘사의 여동생 안나는 밝고 명랑하다. 그리고 끈질기다! 한밤중에도 놀고싶어 언니를 깨워 논다. 그리고 방안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는 언니를 향해 끊임없이 노크하고, 말을 걸고, 노래를 한다.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엘사는 언니가 왜 방안에만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계속 되는 언니의 침묵에 상처받는다. 하지만 상처받으면서도 계속 말을 걸고 묻는다. 그런 안나의 역할을 보며 가족이란 그런 존재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게 무엇이든 가지고 있는 힘, 가능성, 본능,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주는 것, 깨우는 것. 상처받더라도 옆에서 지켜보고 말을 걸고 질문하는 것. 만약 안나가 엘사가 가진 능력을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엘사가 왜 갇혀있는지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안나는 걱정할 일이 전혀 아니라고, 생활에 불편한 부분들은 내가 도와줄테니, 어떻게 하면 그 능력을 재밌게 쓸 수 있을지 연구해보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엘사는 왕위를 물려받지만 여전히 자신을 숨기고 감추기 바쁘다. 하지만 어쨌든 부모의 부재로 인해 엘사는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 동생 안나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다. 엘사는 결국 자신을 드러내기로 한다. Frozen! 물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지만 안나는 끝까지 언니를 따라다니며 엘사를 깨운다. 답답한 알 속에서 나오도록 돕는다.
이 밖에도 이야기가 더 있지만 여기까지 풀어야겠다. 사실은 영화의 세세한 이야기들이 흐려지고 있다. 여울이 태어나기 3일전부터 쓴 글인데, 어느새 여울이가 태어난지 백일이 지나버렸으니. 흠흠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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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가족구성원의 입장에서 내 역할을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을 통해 정리해본다. 딴얘기지만 사실 내가 맨 처음으로 본 영화도 디즈니영화다. 바로 <뮬란>. 나는 뮬란을 내 첫번째 롤모델로 삼았던 것 같다. 이제와서는 쑥쓰럽고 조금은 부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를 구성하고 있는 살 어딘가 한쪽에 아직도 뮬란이라는 여성상이 자리하고 있을게다. 이번에 주목했던 안나역시 내 살 어느메에 자리잡겠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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