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블로그에 3편까지 연재하다 말았던 육아일기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http://2nebear.tistory.com/225
2013년 2월 18일
이음이가 태어난지 반년이 넘었다. 만7개월이 넘은 이음이는 두살이 된 2013년 1월1일부터 기어다니더니 이젠 상이나 벽을 짚고 위태롭게 일어서 미소짓는다. 어쩌면 여름이 오기전에 이음이는 걸을지도 모르겠다.
이음이는 정말 무럭무럭 크고 있다. 애들은 자고 일어나면 큰다는 옛말이 틀린말이 아니다. 낮잠만 조금 오래자고 일어나도 눈빛이 다르다. 내가 노래를 불러주거나 손을 쥐었다폈다하며 '잼잼'이나 집게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찍는 '곤지곤지'를 보여줄때마다 그것에 집중하는 눈빛이 매순간 다름을 느끼고 있다. 내가 보내는 시간과 이음이가 보내는 시간의 깊이나 결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음이가 태어났을때부터 쭉 한결같이 이음이를 대하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게 먹이고, 기저귀가 젖어있지 않게 살피고, 춥고 더럽고 위험한 것으로부터 이음이를 지켜주는 것.
12월 25일 이사후 새로운 집에 적응하랴 피곤한 나와 이음이는 며칠 밤잠을 설쳤다. 많으면 두세번정도 수유하고 잤는데 이사온 뒤로 이음이가 대여섯번씩 밤중수유를 요구하는 것이다. 너무 피곤한 나는 그냥 누워서 물렸고 그것이 며칠 반복되자 습관처럼 젖을 물고 자고 싶어했다. 결국 나는 밤새 젖물리고 기저귀갈아주기를 반복하다 새벽녘엔 녹초가 되고 말았고 아침엔 잠을 못잔 짜증과 스트레스로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녹초가 된 나는 이음이와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게 됐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활동영역이 더욱 넓어진 이음이는 저기서 쿵 여기서 쾅하며 울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음이가 만지면 안되는 물건들은 주변에 왜이렇게 널려있는지 쫓아다니며 치우기 바빴다. 종이는 먼지가 많아 안되고, 전자제품은 위험해서 안되고, 그릇은 깨져서 다칠까봐 안되고, 신발장이랑 화장실은 더러워서 안되고... 그즈음 내 머릿속을 떠다닌 동요 한구절이 있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안돼는 게 너무 많아요~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은 어린시절 까먹나봐~"
그렇게 한 일주일 흘렀나. 정말 피곤했다.
그러다 어느 오후 이음이랑 눈을 마추고 노래를 불러주는데 이음이가 눈으로 나에게 뭔가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순간 팍, 졸고 있는 내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음이는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 반면 나는 늘 '그날이 그날'이었다. 자고 일어나 밥먹고, 이음이 먹이고 재우고, 또 밥먹고, 한자외우거나 컴퓨터하고, 이음이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하지만 이음이는 이불에 그려진 작은 그림도 어제 본거랑 또 다르다는 듯 오늘 다시 눈여겨 보고, 어제 했던 문열고 닫는 놀이가 오늘 또 새롭다는 듯이 즐거워 했다.
여기서 늙어버린 나의 정신세계(!)를 탓하거나 반성하고 싶지는 않다. 그 역시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라 믿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의 모든 일상을 시시하거나 맨날 똑같애서 죽겠다고 여기고 있지 않고 있으므로. 반복되고 있는 일상에서 나름의 삶을 가꾸고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 이음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고, 그것에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초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수많은 추억을 가진 옛친구들을 만날때마다 나는 반가움과 함께 늘 조금은 못된 의문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왜 우리는 만날때마다 과거지사를 들추는 것 밖에 할 수 없을까. 물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의 이야기도 나누지만 주로 옛날이야기들을 즐겁게 소비하고 헤어지기가 일쑤였다. 아무래도 현재 함께 나누고 있는 혹은 나눌 수 있는 어떤 꺼리가 없기 때문이겠지, 하고 나름의 답을 내렸지만 그래도 석연치 않은 뭔가가 있었다. 왜냐면 그렇다고 억지로 뭔가를 하는 것도 웃기고, 물리적으로 쉬운 일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나의 석연치않은 그 마음은 속으로 품고 있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음이와 부대끼다가 그러한 내 마음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관심關心이다.
쉽게 하는 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좀 웃기다. 관關은 성문을 닫아 놓은 모양의 형성자인데, 국경이나 국내요지의 통로에 드나들던 화물이나 사람을 조사하던 곳(네이버한자사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뭔가 수상하거나 이상한 점은 없나, 저 사람은 어디서 왔을까, 저 보따리엔 뭐가 있을까..아주 세심하고 면밀하게 봐야만했던 사정이 있는 글자에서 관심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관계,라는 말도 저 관자를 쓴다.
나와 이음이라는 모자관계에서 관심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엄마 눈은 아기를 좇는다. 그렇다 보니 처음이어서 버벅대긴 했지만 매일 달라지는 이음이를 느끼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더럽고 다칠수 있더라도 이음이가 먼저 만져보고 다가갈 수 있게 열어주었다. 그 다음에 더러워지면 닦아주고 다쳐서 울면 안아주면 오케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됐다. 물론 여전히 피곤한 일상이지만 이음이와 투닥거리더라도 '아 도대체 얘가 왜이럴까'하는 그 불편한 마음만은 사라졌다.
모자관계외에도 소중한 관계는 생각보다 많다. 지켜가고 싶은 소중한 관계는 관심을 갖는 노력을 해야할 것 같다, 노력! 관심을 갖고 있을 때만이 적재적소에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함께 할 때 피곤하지 않고 즐거울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음이만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보다. 나도 크고 있다. 늙고 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기고 있는 걸 보니. 참고로 늙는다ㅡ는 말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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