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 방/책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대체되지 않는 자가 되자>

ARONS 2022. 1. 8. 21:09

 

그냥 하지 마라 저자 송길영
하루 만에 다 읽음!!

 

 

책을 읽기 전에 간략히 어떤 관점으로 읽을지 정해 보고자 한다.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를 통한 대량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분석하고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예측하는 작업을 하는 분의 책이다.

 

변화 원인마저 파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상관관계로서 제시할 수 있긴 하지만) 지금 현재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라던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할 터이다. 그 정도만 알아낸다 해도 거의 예언자가 될 터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건 우리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초연결시대일 터이다. 그리고 영상의 시대이다. 기술의 변화, 욕망과 사고방식의 변화 등 그에 따른 이전 과는 다른 세대(?)의 출현뿐만 아니라,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정신이 없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이런 시대에 어떻게 변했는지 자기 자신마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을 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어떤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살고 있는지 어떤 기준을 정해 볼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그러다 보면 '그냥 하지 마라'라는 책 제목의 의미도 와닿지 않을까 싶다.

 


 

송길영 저자는 데이터 마이닝 작업 즉,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패턴을 파악하고 그 이유, 욕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더 올바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듯한 모습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로이 이 책을 내면서는 감히 선지자적 태도로 말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우리들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투자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성장하는 회사를 찾는, 미래를 그리는 것에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부단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그때그때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른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있어도, 미래를 그리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아니면 뒤섞여 있나?)

 

어떤 시나리오를 짜고 준비하고 행동하는 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어떤 거대한 흐름을 예측하여 행동하기에는 미래를 알 수 없기도 하거니와 어떤 원칙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니 확실히 목표(가치) 지향적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미래를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정확한 미래는 아니겠지만, 데이터로 인한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알게 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원칙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큰 변화가 없어질까? 변화의 방향이 합의되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하는데, 그 변화의 방향은 나의 원칙과 가치관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면 나의 가치관을 더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그 일어날 일들을 활용하는 차원이 될까?

 

일어날 일들이라면 사회적 행동양식의 변화, 개인적 욕망의 변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까? 그럼 일어날 일들은 자명하게 실현될 일이라고 확정하고 그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저항해야 할까? 아니면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는 거고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어쨌든 미래를 알 수 있는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1부는 변화의 기시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윗 질문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 볼까 한다.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당연하게도 이제는 먹는 식용으로서의 개를 묻는다고 인식하는 이는 아마도 적을 것이다. 맥락상 점심시간에 우리 뭐 먹으러 갈까 질문하다가 이어지지 않는 이상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개 식용 문화도 약간의 불문율스러운 거부하는 문화가 된 듯 하니 선뜻 점심시간에 그런 질문 자체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자신이 홀로 보신으로 개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http://m.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45 

 

개 식용 금지?..."판매는 지금도 불법"

개고기 먹는 건 불법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개고기는 ‘판매’가 불법이다. 식품위생법은 개고기를 팔거나, 팔기 위해 조리하는 행위 모두 금지하고 있다. 처벌 규정도 있다. 이렇게 상업적인

m.danbinews.com

 

20년 전에 개고기를 한번 먹어 본 적이 있다. 아니다. 어르신이 점심 먹으러 가는데, 따라가다 5년 전에도 한번 먹어 본 것 같다. 정말 따진다면 최근의 일이다. 직접 사 먹은 적은 없지만 인생에서 2번 먹어본 것 같다.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냥 별생각 없이 먹었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사회적 인식은 데이터로도 확연히 드러나지만, 간략한 뉴스들만 봐도 상당하다. 티브이 프로그램의 변화도 우리 아이 어쩌고에서 이제는 우리 개 어쩌고 가 나오니까 말이다. 나는 앞서 말한 대로 개를 잡아먹는 문화에 꺼림칙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건 아마도 거부하는 문화 영향일 꺼라 생각이 든다.

 

일단은 이런 미래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개를 키우지도 않커니와 앞으로도 키울 가능성도 없고, 투자를 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고서는 특별히 행동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식용금지에 저항하지 않는다 해도 이런저런 생각에 고민은 들 것 같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변화로 산업의 확장은 그런 미래 반려동물시장의 형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해 보이고(투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통찰력이겠지만), '반려'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한층 겸허해졌다는 해석은 단지 의미 부여로 보인다.

 

이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차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경험의 변화이다. 쉬는 집, 이동, 여가공간 등 기능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나누어진 공간이 이전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욕망을 한꺼번에 행할 수 있는 차 공간이 되어 간다고 한다. 기술의 변화로 인한 것이든, 코로나로 인한 이루지 못하는 나만의 공간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이룸(한강뷰가 아닌 트렁크 뷰)이든, 차는 노마드 라이프의 구현이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차는 이동 수단으로서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편이다. 어디 멀리나 가까운곳으로 이동해서 차박을 행하는 것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지도 않는다.

 

앞으로 차는 전기차로 바뀌게 될 것이고 전기를 활용하여 차박을 위한 여러 편의장치까지 한 몫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산업의 확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사회적 행동양식의 변화가 있겠지만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한 몫하게 될 것이다. 욕망이라는 것이 자신이 욕망한다기 보다는 항상 거의 남의 욕망을 욕망하기 마련이므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를 몰고 노마드 라이프를 욕망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다.

 

이런 두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니 미래를 알게 된다는 것이 어떤 가치관을 뒤흔드는 경험이 된다기보다는 그저 상황에 따라 욕망하게 되어 일어날 일을 행하게 된다던가, 나는 딱히 욕망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되겠구나 알게 되는,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미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둘 중에 하나로 행동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이 든다. 여기서 미래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미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어떤 욕망을 품게 될지 알게 된다는 것이고, 내가 어떤 시대적 흐름에 놓이게 될지 잘 알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욕망에 저항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미래를 안다는 것은 투자에 있어서도 엄청난 통찰력을 준다.(이 방향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르겠다.)

 

 

 

 


 

수많은 일어난 일들,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는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저자 자신도 사람인지라 다른 이의 욕망을 욕망하는 이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가족주의와 관련된 논의는 사실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 내가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열심히 보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주장하는 바가 옳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왠지 주위에서 말하는 바들을 듣고 다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에 어떤 큰 단위의 패턴에 동조하는 경향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뭐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정말 욕망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초연결 시대이니 만큼 나이를 불문하고 그 욕망의 전달은 순식간일 것 같다. 또한 조그마한 세밀한 차이의 욕망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소비는 끝이 없다. 

 

세 가지 측면의 욕망을 보여주는 인터넷 제국의 모습은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flex 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거나, 멋진 힙의 모습을 은근슬쩍 운동하는 모습과 함께 보여 주거나, 나의 지적인 비평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관심을 받는다. 분화하고 장수하고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버린 변화 하는 시대에 수많은 욕망들을 확인하고 합의된 욕망들은 더욱 상승하는 욕망이 된다.

 

욕망을 이루는 사회는 정말 즐겁고 활기 찰 것 같다.(그 모습들이 남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은 어찌 될까? 다양한 수준으로 욕망을 이루는 방식에 익숙해 질까? 아니면 못 이룬 욕망에 마음 아파하고 자신을 추동하는 에너지로 활용할까? 변화에 맞춰(욕망에 맞춰?) 일상을 혁신해야 한다고 하지만, 기업은 그 욕망을 만들어 내기 조차 하는 현실에, 오히려 욕망에 휩쓸리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그 알아차림이 또한 삶에 중요 하지나 않을까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렇기에 생존(?)하려면 일상을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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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어나고 있고 더욱 가속적으로 일어날 일들을 보다 보면 무섭기까지 한다. 정말 세상은 편리 해지고 나의 욕망을 그 변화에 맞춰 욕망(적응, 합의)하면 되는 문제일 수 있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나 있지는 않은지 고민이 든다. 그건 어떤 습성, 편견, 신체에 누적된 정서 같은 것이고, 버려야 할 것들 일지 모르겠지만, 미래에 무엇이 살아남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나는 가치관을 뒤흔드는 경험으로 생각지 않는 사람이니 만큼 어떤 것에는 열려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꼰대 같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들이 많다. 이건 너무 길어질 듯하다. 한편으론 데이터적 기반 사고 방식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의사결정의 도구로 탁월하지만 갈등을 다루는 측면에서 칼날이 되지나 않을까 싶다. 예언이 저주가 되기도 하니까(저자가 냉정하다는 평가와 연결되나?)

 

 

 

 


 

저자는 변화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공통된 질문을 파악하고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데이터를 보다 보면 해답 또는 미래가 보인다. 이제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이를 보통사람들에게 적용을 해 본다. 이런저런 질문들은 사방으로 퍼진다. 그러니 충분히 공부를 해야 한다. 질문을 받으면 뇌피셜로 말하지 않게 된다. 방향을 정해 본다.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먼저 하고 방향을 잡은 다음 충실해진다. 그러니 저자는 적응하려면 그냥 하지 마라고 말한다.

 

그런데 적응의 문제는 욕망의 문제이기에 욕망하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아는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주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이미 해 왔던 작업들이었다고 말한다. '원래 있던 고민'이고 '이미 천재들이 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간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충실해라. 그런데 저자가 이미 했던 책 제목처럼 덧붙이고 싶다.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쌩쌩 방/의자] - 메타버스, 돈이 흐르는 미래의 플랫폼이 될까?

 

생각해라, 하지만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우리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 것인가? 배움이란 끝이 없는 것일 터이다. 그러니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고 하는 측면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행한다. 하지만 행하면서 과녂을 좀 더 정밀하게 맞추어 볼 수도 있다. 경험하지 않는 이상 배우지 못하는 점들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일상이다.

 

또 생각한다. 욕망 자체에 대한 고민까지 해 본다. 복잡계의 시대라고 하니 어떤 것이 지금 의미가 있었지만 다음 순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조그마한 의미가 나중에는 엄청 큰 결과의 시작점이었다고 사후적으로 밝혀질 수 도 있다. 전제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한다. 전제가 바뀌면 (다른 전제가 세워지면서) 다른 것들이 바뀐다. 다른 전제가 세워지는 것을 봐야 한다. 그 다른 전제는 온전히 세워질 전제인가? 함부로 상상하지 말아야 할 터이다. 비대면이 아니라 선택적 대면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읽다 보니, 철저히 시대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로써 살아왔음을 느낀다. 2018년 7월 직장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N잡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때 당시 한참 뜨는 신사임당이라는 유튜버를 구독하고 전자상거래 이음수산을 창업하고 주식트레이딩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고 여울스픽을 만들고 크라우드픽이라는 계정을 만들고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 1년간은 지속적으로 쓰려고 하고 있고, 올해는 이여탐험대라는 유튜브 계정을 통해 한 달에 1번이라도 영상편집을 올려 볼까 계획 중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열심히 살지 말자고, 일을 벌이지 말고 어떤 것들이 나한테 닥쳤을 때 맘에 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것은 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이 사회변화 적응을 잘하고 있는 증표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냥 시대의 불안을 느끼기에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의 적응과도 결부 지어 이제야 조금 제대로 하고 싶은 것이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ELVIS LIVES] - 책 목록 읽기 프로젝트 - 펼침과 검색

 

그리고 이 책의 데이터 분석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시대 변화 중심에 젊은 세대들의 입장이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나로서는 지금 막 사회에 들어온 젊은 세대와 일한 경험이 없는 지라, 내가 그들에 대한 판단을 한 적이 없고, 그들의 나에 대한 판단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쉬울 따름이다.

 

최근의 책들을 보면, 재미있는 제목들이 정말 많다. 90년대생이 온다, K를 생각한다(90년대생이 생각하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하지 않다. 등등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서적들과 그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책 등 정말 많다. 앞으로 충분히 읽어 볼 계획이다.

 

그들에 대해 이 책에서는 분석도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른 안타까움에 편애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시대에 그들의 욕망은 중간값, 국룰로 수렴될까? 아마도 그들도 다른이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을 넘어 생존하기 위해 마지막에 저자가 제시하는 것처럼 대체되지 않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욕망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또한 대체되지 않는 무언가가 된다는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겠지만 말이다. 나 또한 그런 욕망을 품는다.

 

[쌩쌩 방/책] - 임홍택 관종의 조건 - 좋은 관종 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