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컷 그림을 그리며 놀던 여울이가 아빠랑 목욕하고 있을 때
더 놀고 싶은 이음이가 자기 목욕차례를 기다리며 다 쓴 스케치북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나도 같이 뒤적이다가 이 여섯개의 얼굴이 그려진 쪽을 찾았다.
이음이 설명에 의하면 여울이랑 이음이가 같이 그렸다고 한다. 어떤 걸 자기가 그렸는지 이야기 해줬는데 까먹었다.
2
이음이가 새꿈에서 생일잔치하고 선물로 받아온 크레파스는, 뭐랄까, 색칠하는 맛이 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건 윤숙이 이모가 선물해준 손에 묻지 않는 크레용이었는데
이번에 받아온 것은 손에 막 묻고 잘 번지고, 진하고 빠르게 칠해지고 똥까지 싼다.
그 크레파스를 들고 둘이 한 번 놀면 손, 발, 다리, 바닥 여기저기 묻고 난리가 나 치우기 힘든 나는
때로 말리기도 하지만, 이음여울이도 막 묻고 난리나는 크레파스로 색칠하는 걸 더 즐긴다.
3
이 여섯개의 얼굴그림을 보자(원래는 눈동자와 색이 없이 그림만 그려져 있었다) 색칠이 하고 싶어져
슥슥 칠했다. 눈동자도 그려주고.
4
왜 칠하고 싶어졌냐면, 얼마 전에 쌩쌩이 이야기 해준 게 생각나서.
어떤 책에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쓰메소세키의 책인지 우치다 타츠루의 책인지, 우치다가 소개하는 소세키의 책인지,...아무튼 거기서 여섯가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근데 또 참 이상하게도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여섯가지 캐릭터에 관한 것이었는지,
교사가 가져야 할 여섯가지 모드의 인격에 관한 것이었는지
얼마전에 들은 나는 햇갈린다. 그 때 딴짓해서 그런가.
무튼 내게 남은 건 여섯가지 모드의 캐릭터! 라는 것.
그 중 기억나는 게 <무기력한 아저씨>와 <흥많은 수다쟁이>라고 했다.
나머지 네개의 캐릭터는 뭘까.
온갖 얼굴들이 뒤범벅으로 섞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슥슥 색칠을 했더란다.
5
색칠한 걸 보고 이음이는 빨간 얼굴을 가리키며, 얘는 빙글빙글 어지러워, 하네 하며 웃고는 목욕하러 들어갔다.
나는 크레파스가 묻은 바닥과 널부러진 스케치북들과 크레파스를 치우고 잘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