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방/공책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노르망디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잔잔 2022. 4. 6. 16:55

노르망디에서 봄을 보내기로 한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가 주고 받은 이메일, 그리고 게이퍼드의 설명과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글의 양이 적지 않았지만 금방 읽었다. 침대맡에 두고 자기전에 읽었는데, 어떤 날은 새벽 2시까지도 읽었다.
나도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호크니를 따라서 눈뜨자마자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여든 세살의 할아버지 화가의 삶이 전하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단순히 제일 비싸게 팔린 그림을 그린 화가로 알고 있었는데, 데이비드 호크니는 엄청 멋진 어른이었다!
그림에 사용하는 다양선과 질감의 표현들도 좋고, 색감도 좋다. 그리고 자신만의 패션철학도! 초록색니트가디건을 보면 이 할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예정보다 더 긴 시간을 노르망디에서 보내게 된 상황에서 행복하게 매일 작업하는 호크니를 그리며 덕분에 나에게도 찾아온 2022년의 봄을 활기차게 맞이하고 있다.




01 뜻밖의 이주 an unexpected move

8. 게이퍼드에게
파벨 플로렌스키를 아나요? 러시아의 성직자이자, 수학자, 기술자, 과학자로 미술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는 역원근법에 대해 훌륭한 글을 남겼죠. 원근법은 그리스 연극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일전에 사진과 연극의 관계를 지적했었죠. 사진과 연극 모두 조명을 필요로 합니다. 어쨌든 그는 매우 흥미로운 작가입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죠. 러시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총살당했습니다.
사랑을 담아 데이비드 호크니

이 이메일에는 80페이지 분량의 글이 첨부되어 있었다.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아이폰 화면으로 그 글을 읽는 것은 것은 꽤나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도했다. 그 글은 아주 흥미로웠다. 플로렌스키는 단 하나의 정확한 원근법, 즉 15세기 초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처음 입증한 단 하나의 소실점을 갖는 ‘르네상스’ 또는 ‘선’원근법만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논박했다. 대신 그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작품 같은 중세 러시아 성상화에서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그림들은 하나의 고정된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중심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플로렌스키는 “마치 눈이 그 위치를 바꾸어 가며 다양한 지점에서 보는 것 같은 방식으로 화면이 구성된다”고 말했다.
*플로렌스키의 책 <시각을 넘어서 beyound vision>

안드레이 루브료프 <예수의 탄생> 약 1405


14. 호크니가 이런방식으로 해체한 작품 중 하나가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가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전화 통화에서 호크니는 내게 늘 이 작품을 사랑했다고 설명했다. 호베마의 작품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이 작품의 시점이 하나가 아닌 두 개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했다. “나무들이 관람자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을 바라볼 뿐 아니라 올려다봅니다.” 호베마 작품의 풍경을 6개의 성형 캔버스 위에 그린 호크니의 작품은 기존 작품의공간 해체와 연구를 결합한 것으로 관람자가 마치 그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15. 호크니에게 장소의 변화는 종종 작업의 변화를 암시하는 새로운 계획의 전주곡일 수 있다. 호크니는 여행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여행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02 작업실과 작업 studio work


34. J-P가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는 내게 이곳에서는 어디로든 차를 타고 나갈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브리들링턴에서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주제가 있는 곳에 가려면 차를 타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곳을 택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내가 나무를 더 잘 이해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죠. 나는 늘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나무들에 열매가 달려 있죠. 나무는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나무는 가장 큰 식물이죠. 나무는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나무는 가장 큰 식물이죠. 사람들처럼 저마다 다릅니다. 잎사귀도 하나하나 모두 다릅니다. 요크셔에 있을 때 하루는 누군가 우리에게 왜 항상 나무를 촬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무가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39. 그림 속의 의자들은 모두 저마다 하나의 소실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의자를 보게 됩니다. 만약 방 전체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죠.

데이비드 호크니 <작업실에서, 2017년 12월> 2017



03 프랑스적인 삶: 보헤미안 스타일의 프랑스 생활 la vie franaise: french life in the bohemian style


67. “나는 프랑스 사람들, 그러니까 훌륭한 프랑스 화가들의 놀라운 점 하나는 아름다운 흔적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카소가 만든 흔적은 어느 것 하나 빈약한 것이 없었고, 라울 뒤파와 앙리 마티스는 아름다운 흔적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붓을 사용해 많은 드로잉을 그렸다. 나는 팔을 자유롭게 놀려 그림을 그리는 한편 프랑스의 회화와 음악을 함께 엮는 방법을 탐구했다.”


74. 게이퍼드 계속해서 성장하는 미술가는, 아니 어느 누구든 나무나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은 물과 무기질, 빛,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그것들을 잎과 꽃으로 변형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계쏙해서 꽃을 피우는 사람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소화하죠.




04 선과시간 lines and time


81. 이 점들을 찍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갈대 펜을 사용해서 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것은 갈대 펜으로 그릴 수 있는 특별한 선이죠. 모든 것이 저마다 다른 선을 만듭니다. 나는 항상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을 그리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드로잉 그리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항상 드로잉을 그립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집 주변, 봄> 작업중이미지, 2019년 7월



95. 호크니가 <바이외 태피스트리>에서 매료된 특성 중 하나가 노르망디의 풍경 속에 있었고 결국 2018년 그를 노르망디로 다시 불러들여 그의 삶과 작업에서 전혀 새로운 국면을 촉발시켰다. 그는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1967년에 한 번 보았고 42년이 지난 뒤에 다시 보았다. 이것은 한 미술가의 삶에서(아마도 비단 미술가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전기가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 요소들은 광경이나 소리일 수도, 인상이나 느낌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규정하기 힘들고 언어로 옮기기 어렵다. 호크니의 경우 40여 년 전에 보았던 수를 놓은 고대 직물 작품에 대한 기억이 (말로 설명하기 대단히 어렵지만) 그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현재 그는 바이외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그랑드 쿠르에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이곳에서 작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그는 <타임스>의 레이첼 캐멜-존스턴에게 노르망디의 봄을 어떻게 “<바이외 태피스트리>처럼 아주 오래되고 오래된 것으로” 묘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털어놓았다.


96. 호크니에게 이 태피스트리의 매력은 길이가 거의 70미터에 육박하고 높이가 50센티미터인 (그리고 9백 년도 더 된) 그림이기에 그가 오랫동안 벗어나기를 갈망해온 정돈된 모서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정돈된 모서리는 전통적인 직사각형의 그림 틀을 제한한다. 그는 태피스트리 바닥면에 지면이 있고 윗부분은 하늘이며,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을 향해 나아가면 2년의 시간이 흐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호크니를 오랫동안 매료시킨 또 다른 유형의 작품인 중국의 두루마리 그림과 유사하다. 두루마리 그림 역시 공간과 시간을 관통해 흐르며 결코 고정된 단일한 소실점을 갖고 있지 않다.


05 메리 크리스마와 예상 못한 새해 a merry christmas and an unexpected new year



103. 호크니는 건강한 생활보다는 좋은 삶을 믿는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풍요로운 삶은 온전한 의미에서 삶을 즐기는 것, 즉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경험하고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와 일치한다. 에피쿠로스는 이상적인 존재는 삶의 쾌락을 즐기는 데 몰두하는 존재라고 믿었지만 가장 영구적인 쾌락은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테네 외곽의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사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또한 인생의 정점은 노년에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판 에피쿠로스 지지자인 클라인처럼 호크니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커지는 절박함에서 젊은 신체에 매달리는 ‘영원히 젊어지려는 사람’과 거리가 멀다. 그는 W.H.오든의 짧은 희극시 <내게는 의사가 필요해>를 즐겨 인용한다. 이 시의 화자는 ‘토실토실한 자고새 의사’를 원한다. 그는 결코 환자가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의사다. “하지만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 내게 나는 죽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06 봉쇄된 천국 locked down in paradise

118. 봉쇄가 시작되자 나의 이메일함은 전 세계의 미술 기관들이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로 넘쳤다. 며칠 뒤에는 온라인 전시를 알리는 소식들이 쇄도했다. 이것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실제 대상을 보는 경험을 대체하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실질적으로 가상 경험이 실제 경험보다 더 나을 수 있는 방식이 존재하는가?
온라인 전시는 분명 실제 전시보다 간편하다. 집에서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워싱턴 국립미술관의 걸작들을 이리저리 둘러볼 수 있다. 당연히 현실과 달리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그 과정은 거의 동일하다. 회화작품을 선택해 세밀하게 관찰하고 수반된 정보를 읽어본 뒤 (가상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진에 불과하다. 비록 없는 것보다 낫긴 하지만 이 경험은 대체물이라기보다는 진품의 인공물임을 더욱 강하게 환기한다. 경험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축소시키는 것이 온라인 세계의 특징이다. 마우스를 클릭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지만 컴퓨터 화면상에서 환하게 빛나는 픽셀로 전환될 뿐이다.

122. 최근 나는 얀 잘라시에비치의 책 <조약돌 속 행성>을 읽고 있다. 이 책은 둥근 웨일스 점판암 조각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이 돌을 구성하는 물질에서 이 전 수십억년에 걸친 태양계의 기원과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지구의 지질학적 발전(과정) 전체를 발견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 장대한 역사로 인해 웨일스 점판암을 ‘평범하다’고 묘사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다 특별하다. 그러므로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볼 수 있다고 암시하는 블레이크의 시의 두 번째 행은 결코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호크니가 노르망디나 이스트 요크셔의 풍경을 ‘천국’이라고 지칭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호크니는 사람들이 에덴 동산을 거닐고 있을 때에도 대부분 그곳이 에덴 동산임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사람들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지면을 훑어보는 데 시간을 쓸 것이다. 세계는 아주아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보아야한다.
이것이 미술과 미술가들이 전문적으로 다루는 주제다. 미술은 일반적으로 나무, 꽃, 바위, 수영장, 구름, 그릇, 가구, 유리그릇처럼 중요하지 않고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대상들은 풍경화와 정물화의 주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 작품 상당수가 풍경화와 정물화의 범주에 포함된다. 미술가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는 평범한 세부 사항들에 흥미를 갖는다.
호크니 나는 정물화를 그릴 때마다 아주 흥분되고 내가 그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천 가지나 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요? 내가 대상에 대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이 알게됩니다. 이렇게 작은 소소한 것들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깨워 줄 수 있습니다.


07 미술가를 위한 집과 화가의 정원 a house for an artist and a painter;s garden

135. 지베르니의 모네(그리고 그랑드 쿠르의 호크니)처럼 반 고흐 역시 아를에서 초기 몇 달 동안 매일 들판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고 도중에 이 작은 건물을 지나쳤기 때문에 노란 집이 자신에게 (그리고 그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완벽한 주거 공간과 작업 공간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1888년 5월 그는 이집을 빌렸고 그다지 많이 바꾸지 않았다. 그저 외벽만 ‘신선한 버터’와 같은 크림색이 감도는 노란색으로 칠했고 초록색의 목조 부분을 추가했으며 해가 저문 이후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작업실에 가스등을 설치했다. 그는 파리에서 발행되는 신문 <피가로>에 인상주의적인 방식으로 지어졌다고 알려진 한 현대식 주택에 대한 기사를 읽고서는 흥미를 느꼈다. 반 고흐는 그 집이 “마치 병의 밑바닥, 둥근 자주색 유리 벽돌처럼”지어졌다고 썼다. “햇빛이 그 위에 반사되면 노란색이 반짝인다.”

138. 반 고흐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곳 사물들의 진정한 본성을 알려면 그것들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고 그려야 한다.” 이것은 같은 장소에 머무를 때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이었다. “나는 계절이 오는 것을 볼 것이고 같은 주제를 계속해서 다룰 것이다.” 호크니와 마찬가지로 반 고흐 역시 루벤스, 컨스터블이 속한 화가의 계보를 잇는다. 이들이 다룬 주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작은 지역이었다.
호크니 그건 큰 장점입니다! 분명 지베르니의 모네도 그랬을 겁니다. 반 고흐 역시 아를에서 다양한 장소들을 각기 어느 시간에 가야 하는지 알았을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한 지역을 아주 잘 알아야 합니다. 사진가 안셀 애덤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그는 요세미티에 살았는데, 그역시 특정 장소에서 빛과 그림자가 가장 완벽한 때가 몇시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겁니다.
호크니가 나무(배나무, 벚나무, 가지에 겨우살이가 얽힌 나무)를 알게되고 오랜 친구들인 양 사랑하게 되었듯이, 반 고흐도 자신을 매료시킨 특정한 덤불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 “특별한 건 아니야. 잔디밭에 심긴 둥그스름한 삼나무 또는 사이프러스 관목이지.” 그는 그 관목을 주제로 그림 한 점을 그렸다. 하지만 그 작품은 사라졌고 그림을 짐작하게 해 주는 드로잉만 남아 있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에너지로 충만하고 활기 넘치는, 멋진 작은 스케치 한 점이 포함되어있다. 이 19세기말의 우편엽서는 호크니가 때로 하루에도 몇 번씩 보내와 작업 중인 작품에 대한 최신 정보를 시각적으로 알려 주는 이메일과 일맥상통한다.



08 하늘, 하늘! the sky, the sky!

143. 나는 초목이 황혼 무렵에 어떤지, 그리고 제대로 보면 나무들이 자주색이라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 정말로 멋지고 화려한 빛의 잔치였습니다. 하늘은 어두운 회색과 흰색에서 시작되어 오렌지색과 빨간색으로 바뀌었는데 회색빛은 매 순간 변했습니다. 굉장한 장관이었습니다. (…) 일몰 사진은 늘 상투적입니다. 단지 한 순간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사진에는 움직임이 없고 따라서 공간도 없조. 하지만 그림에는 움직임과 공간이 담깁니다. 우리에게 태양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눈에 잘 띄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족히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거리를 봅니다. 하지만 사진은 그것을 포착하지 못하죠.

144. 사실 우리는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대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명이나 황혼은 우주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연극무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무대에서 아주 가까운 곳부터 아주 먼 곳까지 배치된 경관을 죽 따라가며 본다.
(…)
호크니 나는 매일 아침 하늘을 바라봅니다. 매일매일이 다르기 떄문입니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조금 끼어있다면 여명은 장관을 이룰겁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구름부터 물들일 테니까요. 찬란한 일출에는 구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이 사실을 브리들링턴에서 알았습니다.

146. 호크니는 최근 해돋이와 해넘이, 퍼붓는 비 또는 계쩔의 변화 같은 변모하는 환경 속 나무 등의 대상을 묘사한 드로잉의 영상 버전을 제작하고 있다. 이 영상들을 보면 워홀이 1964년에 제작한 유명한 영화 <엠파이어>가 떠오른다. 워홀의 영화는 밤 시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촬영한 8시간 5분 분량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는 석양장면에서 시작하는데 흰 화면으로 보인다. 노출을 야간촬영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후 잘알려진 건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내내 이 장면에서 바뀌지 않는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건물 안의 조명이 꺼졌다 켜지고 가끔 워홀과 그의 무리들이 카메라가 촬영하는 유리창에 반사되어 비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무행위에 대한 연구다. 이 영화가 통상적으로 충분한 수면시간으로 간주되는 8시간과 동일한 길이로 지속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엠파이어>는 시적인 귀류법의 논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와 끊임없이 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재치있고 깊이 있는 방식으로 언급한다. 영화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적어도 영화가 작동하는 속도상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는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호크니의 영상 풍경화는 이것을 뒤집는다. 호크니의 풍경화는 우리가 대개 멈추어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광경(새벽, 비, 나무, 지는 해)이 실제로는 얼마만큼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를 강조한다. 우리는 그 대상들을 정지된 스틸사진처럼 오인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마도 우리가 그 대상들을 풍경화로 기억하기 떄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심지어 평상시 우리가 바라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정지된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151. 호크니 내가 항상 캘리포니아를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빛때문입니다. 1933년 영화감동 에른스트 루비치가 베를린에 있었을 때 가십을 쓰는 칼럼니스트인 어느 독일 여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1년에 320일 해가 빛나는 캘리포니아로 가지 그래요?”
과거 호크니는 종종 자신을 끌어당긴 미국 서부의 매력 중 하나가 강한 빛이었다고 설명했다. 브래드퍼드에서 로럴과 하디(20세기 초 미국 희극 영화에 출연한 콤비) 영화를 보며 자란 어린 시절 그는 영화 속 땅 위에 드리워진 강한 그림자에 주목했고, 미국 서부의 햇빛은(산업지역인 요크셔와는 달리)분명 강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 호크니는 예술적 차원에서 공간 탐험가이면서 공간 중독자이기도 하다. 그는 공간을 더욱더 갈망하면서도 가벼운 폐소 공포증이 있다고 시인한다.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같은 한 점에 고정된 원근법에 대해 그가 본능적으로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보는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고정시키기 떄문이다. 소실점이 고정되면 보는 사람 역시 고정된다. 보는 사람의 눈과 시선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이 떄문에 호크니는 뉴욕을 싫어한다. 뉴욕은 그리드 위에 지어진 기하학적인 도시로 하늘을 향해 모서리가 뾰족한 직사각 형태의 건물이 솟아 있다. 그에게 그것은 특정한 악몽, 즉 ‘원근법의 악몽’이다. 호크니는 시각적으로 공간 속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여지를 필요로한다.

152. 호크니 내면의 공간과 외부의 공간은 유사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우주선으로는 결코 우주의 경계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을겁니다. 그곳은 머리로만 가 볼 수 있습니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본 적 있습니까? 수중 촬영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색이 다채롭죠. 우주의 사물이 대부분 색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구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색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파란색, 핑크색, 초록색 등 그 색채들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호크니의 말이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체들은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광물질과 가스에 의해 색을 띤다. 따라서 달은 회색과 검은색의 풍경 안에서 희미한 푸른색이 감도는 단색을 띤다.

153. 올리버 모턴은 책 <달>에서 태양의 열이 지구의 끊임없는 변화를 촉발시킨다고 설명한다. (반면 비활성상태의 달은 그저 열을 받아 데워졌다가 태양 광선을 등지면 식어버린다.)
“초당 1천 6백만 톤의 물이 태양에 의해 지표면에서 하늘로 증발한다. 온도가 더 낮은 고도에서는 수증기가 부드럽고 고른 층을 이룬 구름, 폭풍우가 올 것 같은 높이 솟은 구름, 매, 작은 톱이나 고래 같은 형상의 구름, 또는 작은 구름과 입자, 굵은 빗방울, 큰 우박, 높이 떠 있는 얼음을 비롯해 하늘의 다양한 밝음과 어두움, 부드러움과 견고함으로 응결된다.”
이 증발과 강수의 과정은 모턴의 묘사대로 열대 지방에서 극지방으로 열을 ‘대량으로’운반하는 바다를 포함한 전 지구적 체계의 한 부분을 이룬다. 이 움직임은 육지와 바다의 상이한 온도를 통해 바람을 몰고 간다. 이것이 구름을 움직이고 구름의 움직임은 비를 유발한다. 따라서 호크니가 현재 그리고 있는 모든 그림들은 독특한 대기, 우리 모두가 속한 생물권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그는 생명의 과정을 묘사한다. 바로 이것이 풍경화가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다.
그 거대한 움직임을 상상해본다

154. 2020년 봄 소위 ‘슈퍼 문’ 현상이 일어났다. 4월 8일에는 가장 크고 밝은 ‘슈퍼 문’을 볼 수 있었다. 이 현상은 지구의 위성인 달의 궤도가 일정하지 않기 떄문에 발생하는데 비교적 자주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36만~40만 킬로미터의 범위 안에서 변한다. 보름달이면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슈퍼 문 현상이 일어난다. 슈퍼 문은 평상시의 달보다 14% 더 크고 30% 더 밝다. 이 확대된 크기는 전적으로 물리학의 문제이지만 달이 뜨거나 지는 것에는 또다른 요소가 작동하는데 그것은 우리 그리고 우리의 심리학과 관계있다.

157. 조카가 커다란 달을 사진촬영하려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해돋이처럼 달도 그려야 해. 달은 광원이기 때문에 카메라로 촬영할 수 없단다.”


09 화려한 검은색과 한층 더 섬세한 초록색 sumptuous blacks and subtler greens

161. 과거에는 색채 언어가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면, 반 고흐는 “두 연인의 사랑을 보색의 결합, 즉 두가지 색의 혼합과 대조, 그리고 인접한 두 가지 색이 빚는 신비로운 진동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썼다.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밝은 색조의 광휘를 통해 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별을 통해 희망을 표현하는 방법, 저무는 햇살을 통해 살아있는 존재의 열정을 표현하는 바법. 이것은 분명 눈속임의 사실주의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거싱 아닌가?”

166. 내가 “길이 무슨색이야?”라고 묻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질문의 뜻을 알겠어. 길을 제대로 보면 길은 보랏빛 회색이나 핑크빛 회색이겠지.” 나는 “맞아. 그거야 하지만 정말로 눈으로 봐야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 양 측면에 녹색 식물이 자라고 있는 회색 아스팔트 길을 그냥 보고 말 뿐이죠. 그렇지만 다양한 서로 다른 초록색으로 보지 못합니다.

168. 색채는 전적으로 객관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호크니가 새로운 프린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보는 것은 사진이 재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172. 1970년대 호크니는 그가 말한 ‘자연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연주의의 덫은 사진과 관련 있는 세계를 보는 방식을 뜻한다.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카메라와 동일한 방식으로 색채를 경험하지 않는다. 그리고 호크니가 종종 강조하듯이 우리는 사진이 재현하는 방식으로 공간을(또는 사실상 어떤 것이든)지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본다. 호크니가 즐겨말하듯이 우리의 눈은 우리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1975년 호크니는 마침내 자연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돌파구는 한편의 시, 윌리스 스티븐스의 1937년작 <푸른 기타를 치는 남자>에서 비롯되었다. 시의 1연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남자는 기타 위로 몸을 숙였다.
신통찮은 양떨 깎는 남자. 그날은 초록빛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당신은 푸른 기타를 갖고 있소,
당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연주하지 않는군요.”

남자는 대답했다. “사물의 모습은
푸른 기타 위에서 바뀝니다.”

179. 색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화가들은 종종 초록색처럼 가장 변하기 쉬운 색을 활용할 때조차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의 초상화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초록색이 여젼히 아주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0 더 작은 물방울 several smaller splashes

183. 비 역시 사진으로 촬영하기가 어렵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사랑은 비를타고>를 촬영할 때 사람들은 물속에 우유를 부어야 했습니다. 카메라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새벽 여명과 해넘이, 달처럼 비는 그림으로 그려야하는 또 하나의 대상입니다.

184. 호크니는 마틴 켐프에게도 그의 그림 이메일을 보냈다. (호크니는 현재 하루에 한두 차례 보내고 있다.) 켐프는 레오나르도에 대한 저명한 권위자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미술사학과 명예 교수이고 호크니의 오랜 친구이자 협력자이다. 얼마 있다가 그는 호크니가 이메일로 보내 준 작품에 대해 또다른 이미지로 답장을 보내는 것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분명 전례가 없던 대화가 이어졌다. 이 미술가와 미술사가는 미술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시각 언어로 이루어진 대화를 주고 받았다.
호크니 내가 켐프에게 그림을 보내면 그는 다시 그림으로 답장을 보내옵니다. 그가 보낸 답장들은 아주 훌륭합니다. 그는 내가 보낸 그림을 이해하고는 아주 신속하게 그림 답장을 보냅니다. 나느 그의 미술사적인 언급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내가 보낸 해돋이 그림에 대한 답장으로 그는 단테의 <신곡>에서 독수리가 어떻게 태양을 응시할 수 있는지를 묘사한 삽화를 보내왔습니다. 이것이 중세사람들이 가졌던 믿음이라고 합니다.

188. 나는 천천히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첨벙하며 튀는 물방울과는 실상 모순된다고 생각했죠.” 따라서 물방울을 그린 그림들은 일종의 시간과 벌이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에서 호크니는 액체가 혼란 상태에 빠지는 그 순간의 표본을 주의 깊게 묘사하는 식물학자처럼 다룬다. 다시 말해 그는 거의 과학자와 유사한 태도로 물방울에 접근했다.  


190. 호크니가 그린 물방울은 워싱턴의 고속 사진보다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그의 그림은 우리가 실제로 감지하는 첨벙하고 튀는 물방울과 한 층 더 흡사하다. 이 박진감은 호크니의 그림을 재치 있고 심오하게 만들어 준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고 복잡하며 거의 찰나에 존재하고 사라지는 대상을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린 묘사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물의 작용에 대한 신중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시간과 예술, 지각에 대한 농담이기도 하다.
(…)
트리스탄 굴리는 책 <물을 읽는 법>에서 폴리네시아 선원들이 어떻게 바다 표면의 잔물결과 파도의 복잡한 패턴을 관찰함으로써 태평양의 장거리를 횡단해 항해할 수 있는지를 서술한다. 이런 것들이 육지와의 접근이나 암초 같은 큰 장애물에 대한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사실상 유동적인 지도를 구성하는 셈이다. 이 지도에서 물의 진동은 근처의 사물에 부딪혀 다시 튕겨 나가면서 레이더에 포착되는 음파의 작동만큼이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194. “그곳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와 물의 움직임이 나의 감각을 제어하고 나의 영혼으로부터 모든 동요를 몰아내면서 기분 좋은 몽상에 빠지게 했다. 몽상에 빠지면 종종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밤이 되었다. 썰물과 물의 흐름,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기복이 있는 소리가 내 귀와 눈에 계쏙 철썩거리면서 몽상이 고요하게 잠재운 내면으로 향한 움직임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내 존재를 즐거운 마음으로 깨닫게 하는 데 충분했다.” (장자크루소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
물론 호크니는 연못의 물방울을 관찰하는 동안 꿈을 꾸는 듯한 무아지경에 빠져들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분명한 시각 기억의 유지에 열심히 집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대개 우리의 의식을 채우고 있는 잡다한 걱정과 사잇길로 빠진 생각들을 지워 버렸을 것 같다. 나와의 대화에서 호크니는 “그저 바라보기”로부터 또는 빗물이 떨어지는 “요크셔 길가의 작은 물웅덩이”같은 광경으로부터 얻는 “깊은 즐거움”의 예를 몇 차례 언급했다.
호크니 나는 종종 물웅덩이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보는 것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나를 보기 드문 사람으로 만듭니다. 나는 비를 좋아합니다. 항상 비를 그렸죠.

197. 모네는 수련에 25년 넘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정원 연못에는 그가 그릴 물뿐 아니라 하늘과 실물, 빛과 어둠, 반사된 나무와 구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온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연못은 자연의 거울이다. 프랑스어에서는 공원에 있는 이런 장식적인 수조를 ‘물의 거울’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물을 그린 그림은 큰 범주, 즉 투명성의 재현의 일부를 이룬다. 호크니는 늘 이것을 “좋은 문제”, “회화적 도전”이라고 묘사해왔다. 유리 조각 같은 투명한 물체는 그곳에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대상을 삼차원의 물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지만 그 대신에 그것을 투과해 보이는 상이나 표면에 맺힌 반사를 응시할 수도 있다. 따라서 투명한 물체는 그림과 동일한 특성을 일부 공유한다. 즉 그것은 물체이면서 그것을 통해 다른 대상을 볼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
자연주의적 회화의 역설은 광채와 광휘,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반사가 단단한 고체가 실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사실 그림에서 가장 밝은 부분은 주변 세계를 반사하는 다수의 작은 거울이미지다. (실제로 얀 반 에이크 같은 네덜란드 화가들의 일부 작품에서 진주와 루비에 반사된 작업실 창문을 볼 수 있다) 어떤 주제의 그림이든 투명한 것은 모두 자동적으로 표면과 깊이를 포함한다.

199. 호크니는 투명성을 주제로 다룬 17세기의 시를 즐겨 인용한다.

“유리의 표면을 보는 사람은
유리를 주시할 수도 있고
원한다면 유리를 관통해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천국을 보게 되리라.”

나는 항상 조지허버트의 이 시를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나는 그의 시를 꽤 알고 있습니다. 이 시를 발견했을 때 그의 다른 시들도 찾아봤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아주 훌륭합니다. 유리 표면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리를 볼 때 유리를 관통해 볼 수는 없지만 그다음 단계에서 유리를 관통해서 볼 것인지 여부를 눈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리에 먼지가 끼어 있다면 유리를 한참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다음에 유리를 관통해 보면 더 이상 먼지를 보지 않게 되죠. 나는 유리를 그린 그림을 사랑합니다.



11 모든 것은 흐른다 everything flows

203. 창세기에서 신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면서 벌로 고된 노동을 선고한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지만 이전부터 이미 아담과 이브는 필요한 정원일을 하게 되어 있었다. “여호와 하느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천국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은 많다. 칙센트미하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일(또는 적어도 노력과 집중)이 천국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극작가 노엘 코워드는 유사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일은 즐거움 이상의 즐거움이다.” 칙세느미하이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이고, 적어도 완전히 몰두하게 만들고 무한한 도전을 제시하는 활동을 발견했다면 해가 갈수록 전념하면서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도교와 선禪같은 동양의 사고방식과도 상통하는 생활방식이다. 현재 나이가 94세인 일본의 초ㅓ밥요리사 지로 오노가 대표적이다. 초밥을 만드는 일, 더 나은 그리고 훨씬 더 나은 초밥을 만드는 일은 그의 필생의 업이자 유일한 야망이었다. 그는 미미한 시작을 딛고 일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당의 주인이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할 나이에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해서 생선을 준비하고 요리를 제공하는 데 완벽을 추구한다.

204.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아라. 성공을 노리고 목표로 삼을수록 성공을 놓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뒤따라오는 결과가 되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당신에게 적합하고 당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ㅇ리을 한다면 성공은 따라올 수 있다(또는 따라오지 ㅇ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일을 한다면 어쨌든 가장 중요한 측면에서 당신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분명히 브래드퍼드에서 10대의 호크니가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매일 밤 드로잉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을 때 그것이 부와 명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7 “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흥미로운 성장을 이루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구십에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백살이 되었을 때 나의 예술에서 신의 경지에 이르고 백십살에 점과 점과 붓획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되기를 바란다.”

208. 호크니 모든것이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진과 대조적으로 드로잉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나는 세잔의 말 “쉬지 ㅇ낳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것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를 좋아합니다. 음,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항구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죠.



12 잔물결치는 선과 음악적 공간 rippling lines and musical spaces



223. 호크니는 오페라 <파르지팔>대본에 나오는 가사를 즐겨 인용한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다.” 호크니는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생각하기 몇십 년 전 쓰인 문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바그너의 모든 작품을 좋아한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 공연의 디자인 작업은 아직 이루지 못한 포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오페라 작품을 통틀어 열정적이고 깊이 매료시키는 낭만적인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가장 좋아한다.
호크니 <트리스탄과 이졸데>공연은 어떤 것이든 계속 볼 겁니다. 비록 내가 본 공연 중 많은 수가 끔찍했지만 말입니다. 알렉스 로스의 책 <바그너리즘>을 막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바그너는 회화와 시뿐 아니라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습니다.(로스는 바그너를 “현대 예술의 대부이며 그의 이름은 보들레르, 말라르메, 세잔, 고갱, 반 고흐 등에 의해 다양하게 호명되었다”고 설명한다)
(…)
1988년 말리부 바닷가 집을 구입한 뒤 호크니는 할리우드힐스에서 산을 관통해 달리는 드라이브를 관현악으로 조직하고 차 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 음악에 맞추어 풍경을 조화롭게 조율해 보고자 했다.
224. 데이비드 셰프는 운좋게도 1990년에 이 드라이브를 경험하고 글로 남겼다. 셰프는 당시 호크니가 몰던, 12개의 스피커가 달린 빨간색 메르세데스 컨버터블을 탔다. 그는 달리는 차에 맞추어서 음악이 어떻게 나선형을 그리며 위로 상승하는지, 터널의 조명이 어떻게 바그너의 “쾅쾅 울리는 스타카토”와 동시적으로 합치되는지를 묘사했다. 음악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차는 산정상에 올랐고 그 뒤 모퉁이를 돌자 때맞추어 대단원의 장관이 야수파의 색채로 펼쳐졌다. “불타는 듯한 구형의 태양이 초롯빛 바다를 불사르듯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핑큿핵 구름이 떨어져 나와 갑자기 지구 경계선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또는 호크니 표현대로 “지그프리트(니벨룽겐의 반지의 등장인물)의 장송곡에서 절정부를 듣고 모퉁이를 돌게 되며 음악이 고조되는 순간 떠오르는 해가 가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여정 전체를 지휘한 것은 분명 호크니였다. 이것은 그가 오페라 디자인 작업을 통해 구성하고 있던 경험과 매우 유사한 실제 시간 속 실제 세계였다. 다시 말해 호크니는 음악을 시각적, 공간적 경험과 연결 지었다.

13 번역의 누락(과 발견) lost(and found) in translation

232. 호크니 며칠 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물방울>을 읽었씁니다. 크리블-크래블이라는 나이 든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법사는 웅덩이에서 물방울 하나를 확대하고 와인 한 방울을 더해 핑크색으로 물들입니다. 그래서 물방울 안에 든 작은 박테리아와 생물들이 모두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죠.

235. 처음에 호크니는 모두 합쳐 350편에 이르는 그림형제의 동화를 모조리 읽었다. 몇 년 뒤 그는 이 유서 깊은 북유럽 이야기집에 마음이 끌린 요인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들은 매혹적입니다. 아주아주 단순하고 직접적인 언어와 방식으로 서술되는 짧은 이야기들이죠. 나는 그 단순성에 끌렸습니다. 그림 형제 동화는 마법적인 것부터 도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기이한 경험을 아우릅니다.” 삽화를 그릴 여섯 편의 동화는 다소 별나긴 하지만 일부분 시각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선정되었는데, 아마도 자신을 매료하는 선과 흔적으로 이야기를 번역하는 작업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삽화를 어떻게 그릴 수 있는가의 문제가 때때로 어떤 이야기를 그릴 것인가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늙은 링크랑크>는 그 시작이 다음과 같기 떄문에 선택했습니다. ‘한 왕이 유리 산을 지었다.’ 나는 유리 산을 어떻게 그릴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회화적인 문제였죠.”



14 피카소와 프루스트, 그리고 그림 Picasso, Proust, and pictures

238. 호크니 지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긴 했지만 아이패드 드로잉을 그만두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층을 겹겹이 쌓아올려 드로잉을 그리면 훌륭한 질감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물 제외한 아이패드 드로잉을 아주 큰 크기로 인쇄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못에 떨어지는 비를 그린 드로잉을 큰 크기로 출력해야 모든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로잉은 전적으로 흔적 만들기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241. 구겐하임 미술관의 꼼꼼한 아카이빙 체계와 현대의 정보 보편화 덕분에 마우스를 클릭하기만 하면 호크니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 거의 40년 전에 했던 그의 강연 제목은 ‘피카소:1960년대 주요 회화 작품들’이었다. 호크니는 제르보스의 도록을 극찬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이 도록을 마치 소설책을 보듯 읽어 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로스앤젤레스 집 거실 책장에 꽂혀 있다)
“ 이책은 대단히 독특한 기록입니다. 피카소가 아주 초기부터 모든 작품에 날짜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1939년 6월 23일 목요일 오후나 다른 날 피카소가 무슨 작업을 했는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알 수 있습니다.”

244. 모든 사람들이 같은 그림을 본다 해도 반드시 동일한 것을 보지는 않습니다.

245. 프루스트이 소설이 위대한 현대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시간과 지각의 상관성을 다루기 때문이다.우리는 모든 것을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각도에서 본다. 7권으로 이루어진 프루스트의 방대한 소설은 연애사, 사교모임, 여행 등의 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의미의 줄거리라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 이 소설은 오히려 일련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설 속 화가가 자신의 삶의 복잡한 모자이크가 어떻게 끼워 맞춰지는지를 이해한 순간 절정에 이른다. 호크니가 내게 말했듯이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세계를 입체주의의 방식으로 보는데, 무수한 관점과 시간의 순간들을 하나의 총체로 통합시킨다.

246. 하지만 프루스트의 관점은 거의 추상적인 색의 특징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가 보여 준 한 가지 통찰은 호크니가 자주 피력하는 견해와 상당히 유사하다. 호크니는 ‘우리는 기억을 통해 본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는 카메라 셔터처럼 1초의 몇분의 1동안에 장면을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 눈은 (호크니의 또 하나의 반본구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이전에 보았던 것에 비추어 이해한다. 이것이 프루스트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오직 일련의 서로 다른 순간의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 이유다.



15 어딘가에 있다는 것 being somewhere

253. 하지만 최근에 그는 이스트 요크셔에서, 그리고 지금은 프랑스 북부의 면적 1만 6천 제곱미터의 장소에서 컨스터블이 말한 ‘나만의 장소들’을 음미한다. 정확히 말해 이 풍경들이 특별한 것은 호크니가 오랜 시간 연구하고 내면화한 그만의 풍경들이기 떄문이다. 그는 이 풍경들을 깊이 그리고 철저히, 상세하게 알고 있으며 관심을 쏟는 시간이 쌓이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해 가고 있다. 그에 따라 이 익숙한 장소들이 화가가 필요로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담고 있는 소우주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을 보는 사람이다. 장소가 어디든 그곳은 세계의 일부이므로 시간과 장소의 법칙이 여전히 적용될 것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달도 뜨고 질 것이다.

254. 젊은 시절 낚시꾼에서 미술가로 변모한 또 한 사람, 주세페 페노네의 언급처럼 물고기가 생각하는 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보다는 날씨, 강, 식물, 생명체 등 풍경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을 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259. 호크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해가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수평선까지 내려와서 그곳에서 머물러 있다가 다시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죠. 노르웨이 북쪽에서 그 현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북극광도 봤스니다. 에드바르 뭉크가 그린 태양주변에 펼쳐지는 원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백야에 단지 햇살만 있지 않습니다. 뭉크의 그림과 같은 원들도 있죠. 카메라는 결코 그 선들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6월 오슬로에서 뭉크는 아를의 반 고흐보다 훨씬 더 오랜시간 동안 태양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노르웨이를 두 번 방문했는데 한 번은 베르겐, 다른 한 번은 최북단 지역에 해당하는 스피츠베르겐의 남쪽에 자리한 지역에 갔습니다. 그곳은 세계의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창이 있어서 그 앞에 서서 안개 속에서 해가 지고 떠오르는 광경을 그곳을 조용히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장관을 이루는 곳이지만 나무가 전혀 없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그림을 아주 조금 그렸습니다. 그곳은 항상 밝거나 항상 어둡습니다. 여름에 북극을 방문하면 어두운 밤이 전혀 없겠죠. 그리고 겨울에는 캄캄한 밤뿐입니다.



16 노르망디의 보름달 full moon in Normandy

266l. 호크니에게는 여우와 고슴도치를 나누는 오래된 구분(‘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한 가지를 안다’)이 적용되지 않는다. 호크니는 대단히 중요한 한 가지, 즉 그림을 그리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전념은 그를 무수히 다양한 방향으로, 즉 영화와 사진으로, 디지털 드로잉과 광범위한 인쇄 매체로, 그리고 옛 거장의 그림과 모더니즘을 재해석한 참신한 미술사로 이끌어 주었다. 중요한 예술가들은 모두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방법을 우리게에 가르쳐준다. 호크니는 분명 그렇다. 하지만 그는 세계를 새롭게 보는 방식의 명확성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돌파하는 능력에서 더욱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이 점은 그의 성격과 작품에서 선천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선과 형태, 구성에서 명료성을 사랑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방을 가로질러 크게 울려 퍼지고 더 나아가 전시장 벽을 훌쩍 뛰어넘어 예술계 밖의 더 넓은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그의 그림에 제공한다.